60여년전 10월 보름날 열아홉의 수줍은 새색시는 연지곤지를 곱게 찍고 시집을 왔다. 5살 연상의 남편을 중매로 만나 얼굴도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시집와 평생을 함께 했다.
“그때는 신랑 얼굴도 모르고 시집왔지. 하룻밤 지나고 나서 신랑 얼굴을 처음 봤어”라며 그날을 추억하는 정순례(80) 어르신의 얼굴에는 여전히 수줍은 미소가 가득하다.
평생 곁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돼줬던 남편을 5년전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살아가고 있는 정 어르신.
함께 고생하며 기나긴 세월을 살아온 남편은 떠나고 없지만 남편과의 행복했던 기억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
“보고 싶지. 보고 싶어도 이미 떠나버린 사람을 어쩌겠어”라며 “나는 우리 영감이 보고 싶으면 마음으로 보면 돼”라고 말한다.
이제는 혼자 사는 것이 익숙해진 정 어르신은 매일 경로당에서 마을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정 어르신은 “징하게 고생만 하고 살았어. 그때는 먹고 살려고 안해본 일이 없네”라고 말한다.
벼농사와 밭농사를 지으며 고된 삶에도 자식들에게 하나라도 더 좋은 것을 주기위해 쌀장사, 고기장사 등 안해본 장사가 없을 만큼 4남매를 먹이고 입힐 걱정으로 살았다.
“고생해서 키워놓으니 이제는 내가 자식들 덕에 살아”라며 “전화도 잘하고 집에도 자주 와서 나 사는 것 봐주고 하니까 살지”라며 웃는 정 어르신.
매일 경로당에 나와 마을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화투도 치며 시간을 보내는 정 어르신은 1주일에 3번씩 진행하는 체조교실을 손꼽아 기다린다.
허리가 아파 서서하는 동작은 하지 못해도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흥겨운 음악에 몸을 맡기며 열심히 운동을 한다.
“허리를 못펴서 일어서지를 못해. 앉아서 열심히 체조하지”라며 “운동이 되는지 안되는지는 몰라도 재미있어”라고 얘기한다.
음악소리가 듣기 좋아 체조시간이 기다려진다는 정 어르신은 마을사람들과 함께 박수치고 웃으며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
“우리는 먹고대학생이여”라는 마을 어르신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이것이 행복이제”라고 말한다.
정 어르신은 북적북적하게 살았던 시절도 다 지나고 세월 가는 대로 유유자적 편안한 노후를 보내며 오로지 자식들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건강하게 살다가 영감 곁으로 가야지. 그때까지는 지금처럼 재미있게 즐겁게 살거야”라고 얘기한다.
은혜정 기자 ehj5033@yg21.co.kr
정순례 어르신 / 백수읍 학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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