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아침에 불러 본 독립군가
3·1절 아침에 불러 본 독립군가
  • 영광21
  • 승인 2005.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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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 박찬석 / 본지편집인
박영만 작사, 한유한 작곡의 <압록강 행진곡>이란 독립군가가 처음으로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렸다. 1940년대 광복군들이 불렀던 노래가 감수성이 예민하고 꿈과 국가관을 키울 나이의 아이들 교과서에 실린 것은 뒤늦은 감이 있지만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광복 60주년의 3·1절을 맞이하면서 이 소식이 무척 반가운 반면 조국광복을 위해 몸을 던진 선열들 앞에 못내 부끄러운 일도 있다. 이완용, 송병준 등 주요 친일파의 후손들이 법적소송을 통해 당당하게 수백만평의 땅을 자신들의 땅이라고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친일의 대가로 축적한 수십조원에 달하는 땅으로 친일파 자손들은 거부가 되고 있다. 정작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은 궁핍한 삶을 살아가는데도 말이다. 우리 모두 반성할 일이다.
친일의 그늘은 광복 후 60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친일만이 살 길’에서 ‘친미만이 살 길’이라고 구호만 바꾼 세력들이 곳곳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정의를 저버리고 민족을 배신해도 눈앞의 권력만 장악하면 후대까지 부와 권세를 누리며 잘 살 수 있다는 경험의 체득이야말로 우리의 민족정기를 흐리는 근본원인이다. 우리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안고 사는 한 수없이 3·1절을 기념하고 일본을 성토해도 민족정기는 되살아나지 않는다.

제 아무리 목청껏 독립군가를 반복해서 불러도 제대로 된 과거사 청산이 없다면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무조건 덮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일협정 문건의 경우에서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광복 후 무산된 친일청산은 친일파에 대한 청산의 문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를 송두리째 뒤틀리게 만들었다. 과거의 잘못에 대한 청산을 두려워하지 않고 역사를 무서워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억울하고 무고한 희생자들을 만들어 내면서까지 총칼로 정권을 찬탈한 군부독재를 탄생하게 한 것이다. 또 대표적 친일신문이었던 보수언론들이 아직도 민족지임을 자처하면서 행세하는 서글픈 현실을 낳은 것이다.

우리가 해마다 3·1절을 기념하는 것은 민족정기를 가슴에 담기 위한 것이다. 비록 나라를 빼앗긴 어려운 상황이지만 온 겨레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나라를 되찾고자 떨쳐 일어선 숭고한 뜻을 기리고 마음에 새기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대한민국은 3 1운동으로 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는다’고 돼 있다.

이런 정신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까닭에 광복 직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것이 몹시 안타깝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36년간 일제의 지배를 받은 우리 민족의 수치를 당대에 청산하지 못한다면 다른 민족과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다.

자신의 논문에서 원로 미술가들의 친일행적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교수직에서 쫓겨났다가 6년간의 법적 투쟁 끝에 복직을 판결받았지만 기득권 집단으로부터 거부를 당하고 있는 서울대 김민수 교수의 예가 우리의 현주소다.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솔직한 사과와 반성 대신에 철저한 부인과 어설픈 현실론으로 변명하면서 대부분의 친일 인사들이 득세를 하는 이상 아직까지 완전한 광복은 없다. 86년 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일제의 총칼에 숨진 숭고한 영령들을 떠올리며 3·1절 아침에 의미있는 독립군가를 큰 소리로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