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안목 벗어나 역사 새롭게 볼수 있는 계기됐다”
“좁은 안목 벗어나 역사 새롭게 볼수 있는 계기됐다”
  • 영광21
  • 승인 2005.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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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답사기 - 경주문화탐방을 다녀와서 ②
김대성은 현세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세우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굴암(석불사 석굴)을 조성했다고 한다. 우리의 다음 발걸음은 석불사 석굴이다. 사랑처럼 고운눈이 조금씩 쌓여서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 김대성에 의해 창건됐다. 심오한 믿음과 우아한 솜씨가 조화된 통일신라시대의 가장 뛰어난 대표작이다. 굴 가운데는 높이 3.48m의 본존불이 안치돼 있고 전실과 굴 입구 좌우 벽에는 팔부신상, 보살입상, 나한입상들을 배열하고 본존불 바로 뒤에는 11면 관세음보살입상을 조각했다. 그리고 굴 천장주위에는 10개의 감실이 있다.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는동안 눈이 비로 변해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유적지를 본다는 마음에 마냥 즐거웠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문무왕 해중릉(대왕암)의 모습은 갈매기떼와 어우러져 장관이었다. 바다 한 가운데 솟아오른 큰 바위가 대왕암이다. 왕이 용으로 변했다 해 큰바위를 가리켜 대왕암이라 한다.

비는 계속 내리고 울창한 소나무 숲 속으로 송화산 줄기가 동쪽으로 뻗어 있는 김유신 묘가 보였다. 호석과 돌난간이 눈에 띄었다. 호석과 돌난간 사이에는 십이지신상을 배치했다.

다음장소는 신라 멸망의 애환이 서린 포석정이었다. 술잔을 띄워놓고 술 마시고 시를 읊으며 노는 곳으로 알고들 있지만 최근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마치 전복 모양의 포석정은 통일신라시대의 돌 구조물이다. 그 다음 코스로 문무왕의 아버지인 태종 김춘추의 무열왕릉을 보는 것으로 둘째 날의 일정을 모두 마쳤다. 어제 하루 종일 내리던 비가 그치고 구름사이로 햇볕이 비친다.

마지막 날이다. 큰 가지 하나에 가느다란 손가락 크기의 작은 가지들이 모여서 나무가 되고 물방울 맺힌 목련꽃 가지에서는 이른봄을 느낀다. 오전 9시, 경주 박물관이 첫 번째 코스였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물이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왕실과 귀족의 화려한 생활상을 엿 볼 수 있었다.

흔히 유리컵에 담긴 물의 높낮이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들리듯이 종 또한 높이 길이 폭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 일명 에밀레종(성덕대왕 신종)은 13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종이라고 한다.

겨울바람 사이로 경주 임해전(안압지)으로 향했다. 언덕과 나무로 조경된 동쪽과 축대와 건축물이 있는 서쪽부분으로 구획된 통일신라시대의 별궁이자 인공 연못이다. 그 다음은 분황사석탑을 보았다. 통일 이전 신라 탑으로는 유일하게 남은 것이다. 원래는 9층이었지만, 3층만 남아있다. 돌을 벽돌모양 크기로 깎아서 만든 모전석탑이라고 한다.

그 다음 코스로 경주에서 유명한 신라 천문학의 단면을 보여주는 첨성대에 도착했다. 선덕여왕 때에 조형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관측대이다. 그 주위에는 계림, 반월성 내의 석빙고, 읍성 등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시간상 가보지 못했다.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꼭 잡고 산책할 수 있는 역사산책로를 걷고 싶다.

경주 문화답사의 마지막 유적지인 천마총에 갔다. 무덤 안에서 천마를 그린 흙받이인 장니(말다래)와 금관을 비롯한 많은 유물이 발견돼 천마총이라 했다. 이것을 끝으로 3일간의 문화탐방일정을 모두 마치면서 아쉬움 점이 있다면 남산의 기암괴석과 무수한 불적들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책으로만 읽었던 우물안개구리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역사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선조들의 지혜가 빛나는 문화유산과 더불어 한국인의 긍지와 자부심까지 느꼈다.
누구 못지 않은 과학 기술 수준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춘 경주와 우리의 문화유산을 외국인에게 꼭 알리고 싶다.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