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마을에서 더 즐겁게 살아야지”
“고향마을에서 더 즐겁게 살아야지”
  • 영광21
  • 승인 2016.10.1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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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춘 어르신 군서면 마읍리

“나는 여기서 나고 자라서 지금껏 여든 넘도록 살고 있소.”
나고 자란 고향마을에서 같은 마을의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아 기르며 자식들이 자라 고향을 다 떠난 뒤에도 홀로 남아 고향을 지키고 있는 조광춘(83) 어르신.
군서면 마읍리에서 아들 둘, 딸 넷의 맏이로 태어난 조 어르신은 20살의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중매로 만나 혼례를 치렀다.
60년도 더 넘은 옛날 옛적의 이야기라 당시 남편의 나이는 몇 살이었는지 혼례를 어떻게 치렀는지 등의 기억은 저 세월 너머로 아스라이 사라졌지만 어르신의 기억 속에 혼례를 치르던 날, 빛이 날 정도로 곱던 남편의 얼굴만은 또렷하게 남아있다.
“남편을 중매로 만나서 결혼했는데 키도 훤칠하니 잘생겼었어. 얼굴이 안 이뻤음 시집 안 왔제~”라며 웃는 조광춘 어르신.
우스갯소리에 다른 어르신들도 “이집 양반이 키도 크고 얼굴도 아주 잘생겼었어.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게 안타깝지”라며 입을 모아 얘기한다.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났던 남편과 알콩달콩 신혼생활을 즐길 틈도 없이 논과 밭을 부지런히 일구며 살았다는 조 어르신.
자신의 밭을 돌보고 남은 시간엔 이웃의 밭에서 열심히 일했다는 조 어르신은 “배운 게 없으니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농사만 지었어. 고생고생 농사지어서 자식들 학교도 다 보냈지”라고 얘기한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는 조 어르신은 아이들만은 잘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딸 넷, 아들 셋을 모두 학교에 보냈다.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남편과 쉴 틈도 없이 갖은 고생을 했지만 잘 자란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 그 무엇보다 기쁘다고 얘기한다.
“남편이랑 애기들 키우며 오만 고생 다했제. 그래도 인자 자식들 다 보내고 나혼자 있으니 편해”라는 조 어르신은 경로당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맛있는 식사도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도 피우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때로는 고생이 끝나고 좋은 세상을 맛보려던 찰나에 77살의 나이로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의 다정했던 모습이 떠올라 슬플 때도 있다.
하지만 효심 깊은 자녀들의 안부전화에 외로움은 금세 사라진다는 조광춘 어르신.
나고 자란 고향마을에서 마을사람들과 더욱 즐겁게 지내고 싶다는 조 어르신은 “이 좋은 세상에 소원이 뭐 있겠어. 자식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소원이지”라고 말한다.
유현주 기자 yg21u@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