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영광상사화축제 시·수필 인터넷 공모전 입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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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광21
  • 승인 2016.10.2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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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피안화의 붉은 물결 일렁이는 불갑사와 꽃살문
이종근 / 전북 전주시


영광 불갑사는 지금 온통 피안화彼岸花의 붉은 물결이 일렁입니다. 불갑사도 그간의 업장을 사르고 꽃대를 올리고 있습니다. 불갑사 가는 길은 정갈하고 참으로 예쁩니다.
가로수 아래 붉은 꽃들이 막 피어나고 있었으니 상사화입니다. 여기저기 상사화축제를 알리는 펼침막이 걸려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불갑사 일대가 온통 상사화의 붉은 바다로군요.
그 꽃말은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입니다. 잎과 꽃이 함께 있지 못하고 잎이 다 없어진 후에 꽃대가 올라와 꽃이 핍니다. 그런 만큼 상사화에 대한 많은 전설이 우리 주변 여기저기 피어 있습니다.
전설 속의 주인공들은 다르지만 내용은 유사합니다. 어떤 사람을 숨어서 지독하게 사랑하다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는데 그 무덤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상사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가에서는 이를 피안화라고 해서 귀하게 여겼습니다.
불갑사의 주지스님은 무성했던 잎들이 장마철 거센 비에 녹아 없어지고 꽃대만 올라와 꽃을 피우는 것은 하나의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이 얽혀있는 욕망의 속세를 벗어나 해탈의 세계 속으로 들어감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탐진치는 탐貪, 진瞋, 치痴의 삼독을 말합니다. 탐, 진, 치 삼독은 사람에게 생로병사의 멍에 위에 네가지 고통을 얹어 준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愛別離苦,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괴로움怨憎會苦,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求不得苦, 번뇌에 빠져 헤매야 하는 괴로움五陰盛苦이라고 합니다.
상사화는 삼독 얽힌 욕망을 벗어난 해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상사화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붉은 꽃을 금선화金仙花라 하여 으뜸으로 쳤지요. 불갑사 일대에 금선화가 자생하고 있음은 어떤 인연이 스며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님 발밑에도 온통 꽃무릇이 지천이고 시선이 닿는 빈 하늘 외에는 모두가 붉은 양탄자를 깐 듯한 꽃무릇이 질펀하게 널려 있었습니다.
나무 사이로 붉은 냇물이 흐르는 듯 하다. 흐드러진 꽃, 그 사이 사람들이 이같은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사진을 찍습니다.
“여자 속눈썹 같이 이쁘게 생겼네.”
가늘고 긴 수술을 두고 누군가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지국천왕이 연주하는 비파 소리를 들으며 천왕문을 지나면 강당인 만세루가 나타나고 누하진입방식이 아닌 이 누각을 오른쪽으로 돌아가자 바로 대웅전 앞마당입니다.
불갑사는 384년(백제 침류왕 원년)에 인도승 마라난타가 세웠다는 설과 백제 무왕 때 행은 스님이 세웠다는 설이 있습니다. 현재 불갑사 경내에는 보물 제830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웅전과 조선시대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만세루를 비롯 종각, 산신각, 칠성각, 팔상전, 보광전, 명부전, 일광당 등과 같은 크고 작은 건물들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나그네의 마음을 끄는 건 대웅전 좌측의 일광당이란 전각입니다. ‘일광당’이란 이름도 그럴싸합니다. 방안에 들어앉아 있으면 창호지를 뚫고 오는 한 줄기 빛에 온갖 무명에 갇힌 내 마음이 금세 환해질 것만 같습니다.
일찍이 영광 출신 시조시인 조 운(1898~?)은 ‘창窓을 열뜨리니/ 와락 달려 들올듯이/ 만장萬丈 만록萬綠이/ 뭉게뭉게 피어나고// 꾀꼬리/ 부르며/ 따르며/ 새이새이 걷는다’라고 이곳의 정취를 노래한 바 있습니다. 불현듯 승방 토방에 놓인 잘 닦여진 고무신 한 켤레가 내 오염된 정신의 티끌 한 자락을 씻어줍니다.
대웅전은 조선시대 중기에 지은 것으로 지나치게 크거나 화려하지 않으면서 사찰건축의 우아함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게다가 뒷산인 연화봉과 어우러진 그 자태가 무척이나 곱습니다.
대웅전의 앉음새가 여느 사찰과 다릅니다. 부처님의 좌향 또한 건물의 측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건물은 서쪽, 부처님은 남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라난타를 기리기 위해 그가 건너온 서해바다를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남쪽을 보고 계신 것은 지세의 흐름에 따른 것이란 게 주지스님의 설명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법당이 불갑사뿐인 것은 아닙니다. 부석사 무량수전과 마곡사 대광보전도 그러합니다. 하지만 그것과도 달리 불갑사의 대웅전은 부처님의 눈길이 닿는 측면 벽까지 꽃살문을 달아 절 올리는 모든 이들의 얼굴에 꽃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앞쪽 문에 달린 문살은 꽃무늬로 조각하여 당시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엿보게 하는 상징물에 다름 아닙니다.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나무 토막을 꿰맞춰 지었다는 대웅전의 빛바랜 단청과 처마 밑을 장식하는 정교한 조각은 이곳이 예사로운 사찰이 아니었음을 한눈에 짐작케 하고 있습니다.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의 솟을꽃살문은 수백년 시간을 그대로 견뎌낸 나무결이 색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고풍스런 문창살은 장인들이 땀을 쏟아 하나하나 새겨 놓은 모란과 연꽃 문양들이 화사한 꽃밭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곳에 가면 온통 꽃밭 천지입니다. 그 꽃은 그러나 땅에 피어난 게 아닙니다. 창호(窓戶, 문)에 활짝 핀 꽃, 바로 문창살(문살)에 조각해 놓은 꽃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시들 줄을 모르며 천년여 동안 방실방실 우리를 맞고 있습니다.
대웅전 어간의 찬바람에도 시들지 않는 솟을연꽃살문, 솟을모란꽃살문과 솟을금강저꽃살문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정면과 남측면의 꽃살문과 교살문은 더욱더 화려하고 섬세해 조선후기 사찰 건축의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금강저金剛杵는 불교의식에 사용하는 불구의 하나로 원래는 제석의 전광에 붙였던 이름이었으나 점차 여러 신들이나 역사가 지니는 무기를 가리키게 된 바, 꽃살문에서 금강저는 바르고 옳은 지킴이의 힘을 나타냅니다.
천년을 내려온 역사의 흔적이 나그네의 가슴을 흔듭니다. 백제 때는 무시이군武尸伊郡이라 불렀으나 고려 때부터 영광으로 고쳐 불렀던 곳.
국어사전은 영광靈光에 대해 ‘신령스러운 빛’이라는 뜻과 ‘왕의 은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를 함께 싣고 있습니다. 왕이란 전제군주뿐 아니라 법왕인 부처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리라.
그렇습니다. 전남 영광은 그렇게 법왕의 은덕을 입은 땅인 바, 반짝이는 별빛처럼 영롱한 꽃살문,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귀에 들리는 것은 다 부처님의 음성이요一切聲是佛聲,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부처님의 상호다一切色是佛色라고 말하고 있으니, 눈앞에 전개된 꽃살문은 곧 화엄세계의 모습이고, 문살에 새겨진 꽃들은 하나하나가 부처님의 상相이 아니던가요?
불갑사의 가을은 이맘 때 붉은 빛으로 달뜹니다. 멀쑥한 연두 녹대 위에 무리 지은 꽃숭어리가 무리를 지어 피어나 황홀합니다. 따로 나는 꽃과 잎의 속성 때문에 꽃말은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의미하는 말처럼 우리네 인생이 바로 그러해서일까요. 요염하고 연하디 연한 붉은 속살이 황홀할 지경입니다. 꽃 귀해지는 가을이라더니 그 말이 무색합니다. 안도현 시인이 그랬다지요. “세상 사람들아, 꽃무릇을 보지 않고 가을이라고 말하지 말라.”
산자락 구석구석에 토해 낸 선홍빛 자태가 유난히 곱습니다. 어쩌면 감당할 수 없는 신화같은 꽃사태에 쩔쩔맬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사무치게도 그립고 또 그리워 상사화처럼 붉은 가슴이 되었나요. 버림받을 것을 염려해 사랑을 포기하지 않듯 만나지 못할 걸 알면서도 영원한 그리움으로 피는 꽃무릇에 잠시 마음 뺏겨도 좋은 철입니다.
꽃은 지려고 피고, 꽃이 져 열매 맺힌다는데, 꽃무릇은 열매도 없습니다. 꽃무릇, ‘이룰 수 없는 사랑’은 더 아름답습니다.

■ 수상소감 - 대상 이종근

나 하나의 모든 그리움, 소슬한 가을바람에 실어 보냅니다. 늘 속앓이를 했던 숯검댕이 가슴이 퍽이나 고맙게만 느껴집니다.
불갑사 대웅전 부처님의 눈길이 닿는 측면 벽까지 꽃살문을 달아 절을 올리는 뭇사람들의 얼굴에 꽃그림자를 드리웁니다.
대웅전 어간의 찬바람에도 시들지 않는 솟을연꽃살문, 솟을모란꽃살문과 솟을금강저꽃살문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호랑나비가 내려앉을 듯 생생한 상사화 하나하나에선 융숭한 세월의 향기가 묻어납니다. 세월이 많이 지났어도 나무의 화려함에 변화가 없는 것처럼 은은하게 향기를 우려내는 불갑사의 꽃창살처럼 아름다운 마음 고이고이 간직한 채 곱디곱게 늙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심사평

2016영광불갑산상사화축제 기념 시·수필·시조 인터넷공모전에 응모한 작품들을 보면서 새삼 상사화의 꽃말이 지닌 애틋함을 느꼈다.
이번 심사의 첫번째 기준은 상사화가 지닌 그리움을 노래한 글을 찾되 그리움만으로 치장된 작품을 골라 누락시키는 작업이 됐다. 처음 읽는 과정에서 과반을 넘는 대다수의 작품들이 나가 떨어졌다. 어떻게 보면 참 허망한 일이었고 심사자의 입장에서도 문학작품을 읽는 재미는커녕 곤혹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최종 대상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산문 <피안화의 붉은 물결 일렁이는 불갑사와 꽃살문>과 운문 <꽃웃음>을 두고 대상작품 1편을 고르는 일은 힘들면서도 즐거웠다.
불갑사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두고 치밀한 관찰과 사유의 결과치를 담담한 필치로 담아낸 산문작품과 상사화를 매개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매끄러운 리듬으로 형상화시킨 운문작품은 쉬이 고르기 힘들어서 몇번을 뒤적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전자의 산문을 골랐다. 이는 동봉한 작품들의 우열성 때문이었다. 군대에 간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씌어진 산문 <화엽불상견>은 약간의 주관성을 감안하고 본다면 이 역시 충분히 수상권에 들 수 있는 고른 수준의 작품이었음에 비해 충분한 시적 표현의 능력을 지닌 것으로 읽히는 운문 <붉은 강물>은 주제의 구현에 있어서 막연한 그리움의 토로라는 함정에 빠졌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사위원 박 관 서
시인·광주전남작가회의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