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영광상사화축제 시·수필 인터넷 공모전 입상작
■ 2016영광상사화축제 시·수필 인터넷 공모전 입상작
  • 영광21
  • 승인 2016.10.22 11: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상 꽃웃음
정정해 / 광주광역시 서구

어린 시절 소풍 와서
뛰놀던 불갑산 자락

넉넉한 앞마당에 서면
어디론가 사라진 벗들의 웃음소리

보물찾기, 장기자랑에
시간가는 줄 모르던 사연들

순박한 잇몸을 드러내며
웃고 울던 시절은 어디로 가고

상사화 흐드러지게 피어난
지금 이 시각을 바래 본다

꽃잎 속에 숨어 있는 얼굴들
미치도록 보고 싶다 친구야

손을 흔들며 붉은 꽃웃음


금상 꽃무릇 편지
김성신 / 광주광역시 북구

저물도록 생선을 판 빈 광주리에
벗겨진 비늘 대신
별빛을 무수히 이고 와
묽게 번지는 노곤함을 씻어 내고는
깊은 잠에 드신 그녀가 보내온 편지

‘아가야, 어미가 되는 일은 심장까지 다 내놓는 일이다’며
어두운 그늘을 꼼꼼히 지워가며
담백한 대화체로
가을햇살이 산보하는 오후와 함께 부쳤다

날선 바람에 흔들리며
갈라진 틈을 메우다
잘못,
뿌리 채 뽑힌 지난 일들이
정갈한 울음자국 흘려있기도 했다
막막한 길의 끄트머리마다
가녀린 꽃 대궁을 한 채로
한 생애,
아직도 잊지 않고 보내시는 한결같은 염려

불갑사 어귀 산언덕에
산사의 예불소리 길로 닦으며
온통 선홍빛으로 꽃을 피운다.

 

 

은상 아버지 그리고 영광
공혜정 / 광주광역시 광산구

매일 출퇴근을 하며 지나는 나의 고향 마을 영광군 묘량면 연암리. 이제는 상수도 연암제로 바뀌어 집터도 남아있지 않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폐교가 되어 나의 어릴 적 흔적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아 아쉽지만 사람이란 얼마나 멋진 존재인가! 추억과 향기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내가 어릴 적 등하교시 보았던 산의 나무는 풍파를 겪으면서도 키가 조금 더 자랐을 터이고, 들꽃은 더 여러번 씨를 전파해 가족을 늘였겠지. 나는 그곳을 떠났지만 그곳을 지키고 있는 우직한 생명체들에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젖소를 키우는 목장이었다. 부모님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늦은 오후 두번씩 젖소의 젖을 짜야 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하루도 쉬실 수가 없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부모님의 보살핌보다는 집에 있는 가축들과 교감을 나누며 보낸 시간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아쉽다. 아버지와 온전히 함께 보낸 추억이 꺼내지지 않음이.
동성 동급생 하나 없이 혼자서 이 꽃도 보고, 저 돌도 만져보며 그 먼 길을 걸어 다녔던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벌써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내 곁에 없다. 내가 첫 직장을 영광으로 삼고 출근한 그 해, 아버지는 갑작스레 찾아온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떠나셨다. 준비하지 못한 이별의 아픔을 온 세포 하나 하나가 감당해야 했던 그 때, 그 때, 그 때.
떠나갔던 영광에 다시 돌아와 근무한지 어느덧 10년이 되었고, 아버지가 떠나신지도 10년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외할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가셨다는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두 딸, 상사화 축제에 한 번도 와보지 않은 남편과 함께 늦은 오후 상사화를 보기 위해 불갑사에 왔다.
초등학교때 매번 소풍을 불갑사로 가는 것이 불만이었던 소녀가 이제는 아줌마가 되어 이 곳을 다시 찾았다. 엄마가 싸준 김밥 도시락을 짊어지고 불갑사를 향해 걷던 기억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는다. 내가 자란 만큼 불갑사도 변해 있다. 그리고 불갑사 곳곳을 가득 메운 상사화를 보니 괜히 아버지 생각이 난다. 딸이 탄 첫월급으로 마련한 선물도 받지 못하시고, 딸 결혼하는 것도 보지 못하시고, 어여쁜 손녀들의 재롱도 보지 못하시고 떠난 아버지. 그리고 무엇 하나 보답해 드리지 못해 그저 안타깝고 아리기만 한 나의 마음. 상사화는 그리운 이를 아스라이 떠올리게 하는 붉은 액자 같다.
아버지는 연고도 없는 영광에 오셔서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셨다. 그토록 고단한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이었겠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아버지와 온전히 함께 보낸 추억이 꺼내지지 않음에도 아버지가 나에게 왜 이렇게 크고 그리운 존재인지를. 그렇게 아버지가 만들어 놓으신 시간과 공간 위에 나의 시간과 공간을 포개어 본다. 훗날 나의 아이도 자라서 이 위에 또 시간을 포개어 가겠지. 그리고 나와 함께 했던 이곳에 찾아와 나를 기억해 주겠지.
고향 마을도, 마을 사람들도,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그리고 아버지도 내 곁에 없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영광 이곳저곳에서 아버지를 느끼고,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영광에서의 기억은 항상 아버지가 함께 계시므로 나에게 영광은 고스란히 아버지다. 그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