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이 성공해서 남 부러울 것 없어”
“자식들이 성공해서 남 부러울 것 없어”
  • 영광21
  • 승인 2016.10.22 11: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행근·양선녀 어르신 대마면 홍교리

“젊었을 적 고생이야 말할 것도 없지. 말로는 그 고생을 다 표현 못해. 그래도 자식들 잘 키웠으니 남 부러울 것 없지.”
잘 자란 곡식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도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뿌듯한데 하물며 갖은 고생을 하며 평생을 바쳐 지은 자식농사가 성공했을 때의 마음은 어떨까.
24살 대마 총각과 19살 법성 처녀가 만나 동고동락하길 67년.
대마면 홍교리에 사는 조행근(91)·양선녀(86) 어르신 부부는 잘 자란 자식들의 모습을 보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19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에서 공부를 시켜준다’는 꾐에 넘어가 일본 아오모리의 해군기지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 23살에 그리운 고향땅으로 돌아왔다는 조행근 어르신.
군복무를 하던 중 어머니와 큰형님의 소개로 아내를 만나 24살의 나이로 음력 섣달에 혼례를 치르자마자 조 어르신은 아내와 함께 할 틈도 없이 다시 부대로 복귀해야만 했다.
아내 양선녀 어르신은 “결혼하고 하루 지나고 떠났던 남편이 3년이 지나서야 돌아왔어”라며 “남편이 없는 동안 시집살이하면서 고생하며 살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라며 힘든 그 시절이 생각나는 듯 눈물을 훔친다.
조 어르신이 군부대로 돌아가 전장에서 활약하는 동안 양 어르신은 시댁인 대마면 홍교리에서 알뜰살뜰하게 시부모님을 모시며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결혼 후 이듬해 터진 6·25전쟁. 비오듯 폭탄과 총알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조 어르신은 공병으로 활약을 펼치며 1950년 12월30일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훈장을 받은 후에도 조국을 위해 몸을 아낌없이 바친 조 어르신은 1952년 옆구리에 지뢰파편이 박히는 아찔한 사고를 당했지만 무사히 전역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부부가 함께 부지런히 나락을 베며 3남7녀의 교육에 힘썼다는 조행근·양선녀 어르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벼농사를 짓고 소도 키우며 고생했던 세월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어려웠던 가정형편 속에서도 잘 자란 자식들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큰 아들은 전남대 화공과 나와서 자영업을 하고, 둘째아들은 전남대 전자공학과 석사인데 지금 서울 KBS본사에서 일하고 있어. 또 셋째아들은 전남대 기계공학 박사야”라고 말하는 조행근 어르신과 “딸들은 광주에서 공무원을 하고 있어”라며 웃는 양선녀 어르신.
효심 깊은 자녀들과 긴 시간을 함께 아끼고 사랑해온 서로가 있기에 행복하다는 이들 노부부는 “더 이상 소원도 없고 걱정도 없어”라며 환하게 웃어 보인다.
유현주 기자 yg21u@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