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생동안 내 고향마을 지켜야지”
“여생동안 내 고향마을 지켜야지”
  • 영광21
  • 승인 2016.11.2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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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어르신 / 대마면 화평리

대마면 화평리 산정마을에서 독자로 태어나 80년 평생 고향을 지켜온 박재일(80) 어르신.
병자호란이 일어났던 1636년 조상들이 대마면 화평리에 정착한 것을 시작으로 대대손손 화평리에서 살았다는 박 어르신은 농사꾼의 아들로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농사만 짓는데 뭔 돈이 있겄어. 돈 없어서 학교도 못 갔어. 학교에 너무나도 가보고 싶은 마음에 빚까지 내서 중학교에 갔지. 얼마나 기쁘고 즐거웠는지 몰라.”
영광서중학교를 졸업해 19살의 나이에 장가를 갔다는 박 어르신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89마지기의 논과 직접 구입한 소 1마리로 식구들의 생계를 이어나갔다.
형제 없이 독자로 나고 자랐던 설움에 박 어르신은 아내와 아들 셋, 딸 넷을 낳아 대가족을 꾸렸다. 가족이 많기에 더 부지런히 일해야만 했다.

“소가 우리집 1등 공신이었지. 소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면 무조건 논부터 샀어. 그러다보니 40 ~ 50대에 접어들어서는 89마지기이던 논이 100마지기가 됐어.”
열심히 땅을 사 모으며 재산을 불려나가는 한편 자녀들의 교육에도 힘썼다는 박 어르신.
자녀들의 교육에 열성을 다한 덕에 첫째아들은 토지개발공사에서 일하고 둘째아들은 최근 장군으로 승진해 마을의 자랑이 됐다. 또 둘째딸은 서울 KBS에서 일하고 있다.
박 어르신은 “자식들 잘 되게 해달라고 얼마나 간절히 빌고 또 빌었는지 몰라”라며 “둘째아들이 장군으로 승진했을 때 조상님들께 고마운 마음에 선산을 열심히 가꿨어”라고 얘기한다.
비록 젊은 시절 함께 동고동락하며 고생한 아내는 68세의 나이에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박 어르신에게는 7명의 자녀와 15명의 손자, 손녀들이 있기에 외롭지 않다고.
2006년부터 마을의 노인회장을 맡았다는 박 어르신은 마을에 경로당이 없어 어르신들이 지낼 곳이 없자 자신의 땅을 선뜻 경로당 부지로 내놓았다.
박 어르신은 “마을 사랑방은 온통 남자들 차지니 부인들이 갈 데가 없었어”라며 “좋은 경로당이 생겨 부인들이 놀 곳이 생겼으니 얼마나 좋아”라고 말한다.
앞으로도 나고 자란 고향마을과 문중을 지키며 건강하게 지내고 싶다는 박재일 어르신은 “자식들도 다 잘 자랐는데 더 이상 뭔 소원이 있겠어. 그저 건강하게 내 고향과 문중을 지키는 게 소원이고 바람이야”라고 얘기한다.
유현주 기자 yg21u@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