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부지런한 농사꾼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부지런한 농사꾼
  • 영광21
  • 승인 2016.12.1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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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회 어르신홍농읍 상하리

새삼 겨울임을 실감나게 하는 찬바람이 불던 12월의 어느 날.
마을 어르신들의 사랑방인 홍농읍 상하리 만수경로당에서 경로당 최고 연장자인 유재회(92) 어르신을 만났다.
홍농읍 신석리 상석마을이 고향인 유 어르신은 “예전엔 마을에 강릉유씨들이 많이 모여 살았는데 지금은 다 도시로 떠나고 얼마 안 남았어”라고 얘기한다.
고향마을에서 나고 자란 유 어르신은 5남매중 장남으로 16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의 가장이 됐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으로서 짊어진 삶의 무게를 느끼며 보낸 유년 시절.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에 가장의 무게는 무거웠지만 유 어르신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불평불만 없이 열심히 일했다.
“그 당시엔 다들 농사지어서 먹고 살았어. 나도 벼농사를 70마지기나 짓다 보니까 머슴도 부려가면서 쉴 틈 없이 부지런히 일했지.”
일본의 강제징용을 피해 19살의 나이에 4살 연하의 법성 처녀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은 유 어르신.
나이든 어머니와 아내, 아들 넷, 딸 셋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더욱 열심히 일했다.
지금처럼 좋은 농기계도 없이 모든 것을 손으로 해야 했기에 오랜 세월 고된 농사일로 크고 듬직했던 농사꾼의 두 손은 거칠게 변해버렸다.
“아휴 그 당시는 일일이 다 손으로만 해야 하니까 그야말로 고생이제. 70마지기는 소 1마리로 어림도 없었어.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제”라고 얘기하는 유 어르신.
몇날며칠 꼬박 밤을 새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된 지난 세월이지만 잘 자란 자식들을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하다.
유 어르신은 “고생해서 농사지어서 먹고 살고 애들 학교도 보내고 그러고 살았지. 옛날에는 공부도 잘 못하고 그래서 애들이라도 잘 가르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노력했어”라고 얘기한다.
함께 동고동락하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자식들도 모두 타지로 떠나버린 고향에서 홀로 남아 경로당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여생을 즐기고 있다는 유 어르신.
매일 경로당에 나와 심심할 틈이 없다는 유 어르신은 “나이 들어서 농사는 진즉에 그만뒀어. 매일 복지회관에서 맛있는 점심도 먹고 경로당에서 즐겁게 놀며 지내고 있어”라고 말한다.
유현주 기자 yg21u@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