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온목자리 모판사다리 계발한 귀농 과학자
항온목자리 모판사다리 계발한 귀농 과학자
  • 박은정
  • 승인 2005.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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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문화예술인 85 - 발명가 정병일
“조금만 관심 갖으면 주위엔 발명품 가득”

불갑면 부춘리에서 가오산업을 운영하는 정병일(73)씨. 그는 방위산업체를 퇴직한 뒤 귀향해 18년째 허리디스크 등에 효험이 있는 나무자리와 농기계 보조기구 등을 만들며 노년을 보내고 있다.

전남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경남 창원의 한 방위산업체에서 40여년간 근무한 후 1987년 귀향한 정 씨는 의사로 지내던 막내동생이 앓고 있던 허리디스크 치료에 도움을 주기 위한 나무자리 항온목자리 개발에 착수한 3년여만에 인큐베이터의 원리를 응용한 제품생산에 성공했다. 또 인체에는 전혀 해가 없지만 병충해와 잡초만 제거하는 그만의 농약도 만들어 3년째 사용하고 있다.

이런 그가 요즘, 100평 남짓한 작업장에서 못자리에 육묘상자를 손쉽게 설치할 수 있는 농기계 보조기구인 속칭 ‘모판 사다리’를 만드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정 씨는 “부인과 단둘이서 볍씨를 뿌린 육묘상자를 농로에서 6∼8m 떨어진 못자리로 옮겨 설치하고 다시 모가 자라면 이 육묘상자를 경운기로 옮겨싣는 것이 너무 힘들어 연구 끝에 컨테이너벨트 장치에서 착안한 모판 사다리를 개발하게 됐다”고 밝혔다.

“누구나 생활 속에서 ‘이렇게 바꿔보면 더 좋겠다. 이런 게 있으면 편리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잖아요. 농사짓는 데도 불편한 부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다행히 제가 만든 물건들을 주변 사람들이 잘 사용해 보람을 느낍니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30마지기 벼농사를 거뜬히 해내고 있는 정병일씨. 젊은이 못지 않은 체력을 자랑하는 그가 항온목자리와 육묘상자를 논에 손쉽게 옮길 수 있는 농기구를 개발해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정 씨는 “언뜻 보면 사다리를 평지에 비스듬히 세워놓은 것처럼 보이는 모판사다리는 좌우 양끝이 일정 각도로 경사져 있다”며 “중간중간 육묘상자가 잘 움직일 수 있도록 롤러가 달려 있어 사다리에 옮겨진 육묘상자들은 경사가 낮은 쪽으로 줄줄이 밀려 내려가기 때문에 논까지 힘들이지 않고 이동시킬 수 있다”고 장치의 편리함을 밝혔다.

사다리 끝에는 플라스틱 재질의 파이프가 가로로 붙어 있다. 이 파이프는 물을 댄 논 위에 사다리가 둥둥 떠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조립식이라 이동할 때도 어려움이 없고 전체 길이도 4~12m까지 필요한 만큼 연장할 수 있어 좋다.

정 씨는 이같이 생활에 유익한 물건을 만들기 위해 지금도 자정까지 농사 전문서적을 뒤적이거나 물리 화학 수학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이렇게 늘 책을 가까이하는 남편 때문인지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부인 강 씨도 그동안 대학생들이 읽는 국사책을 무려 10여번이나 독파했고 중학교 3년 과정의 영어를 독학해 얼마 전 외국여행을 할 때는 필요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정 씨는 “여러 신문과 TV방송 등에서 취재와 촬영을 해 갔다”며 “이렇게 다른 지역과 언론매체에서는 높은 관심을 보이며 호평을 하고 있지만 오히려 지역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고 서운함을 밝혔다. 그의 작업실에 켜져 있는 노란 백열등의 은은함처럼 정 씨는 우리지역의 과학자이고 발명가로서 그 실력의 빛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