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을 일구는 여성 - 김인순 영광 월평리
영광읍 월평리에 도배지를 알맞게 재단해 건물내부를 아름답고 깨끗하게 꾸미는 일을 하는 이가 있다고 해 찾아 나섰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 김인순(56)씨. “내가 뭐 한 것도 없는데 무슨 일인겨”라며 반기는 말이 경상도 사투리 절반과 전라도 사투리 절반이 섞인 국적불명의 말투다. 부산이 고향인 김 씨. 그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남편을 만나 7년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결혼 전 전원생활을 꿈꾸고 동경하던 김 씨는 결혼후 남편을 무작정 따라 내려와 그때부터 지금까지 남편의 고향인 영광에서 생활하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만성 신경통으로 몸이 늘 안 좋던 남편은 40대 초반 뇌졸중으로 쓰러지게 되고 3년여를 앓다 1995년 세상을 떠나게 됐다.
김 씨는 40대 중반에 남편과 사별을 하고 2남1녀의 자녀들을 키우며 가장으로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도배기술은 신혼시절, 수입도 높은 편이고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아 취미생활로 배우게 됐고 그때부터 일을 조금씩 하게 됐다”며 도배를 시작하게 된 동기를 밝힌 김 씨는 16년째 도배 일을 하고 있다.
김 씨는 “들일 집안일 등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사느라 도배 일을 전적으로 나서서는 하지 못하고 있다”며 “고정으로 일을 맡겨오는 지업사를 통해 급한 일들을 맡아 틈틈이 도배를 하고 있다”고 바쁜 일상을 밝혔다.
김 씨는 담배 고추 등의 밭농사 2,000여평과 논농사 3,500여평의 농사를 혼자서 짓고 소 5마리도 함께 키우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들을 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영광종합병원 자원봉사대원으로도 활동을 하고 있다. 어쩌면 편히 잠잘 시간도 제대로 없는 바쁜 일상을 쪼개 도배봉사를 펼치며 사랑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마을의 한 주민은 “부산댁은 웬만한 남자도 하기 힘든 일들을 혼자서 척척해내며 정말 부지런하게 사는 사람이다”며 “그의 남편 또한 살아있을 때 마을이장 총대 영농회장 등을 맡아하며 자기집안일보다도 마을일을 더욱 적극적으로 발벗고 나선 참 좋은 사람이었다”고 그의 남편을 회상하며 칭찬했다. 아마도 이들 부부는 남을 위하는 마음과 성실함이 닮았었나 보다.
김 씨의 막내딸은 결혼을 했고 아들 둘 또한 직장을 다니며 자기생활을 충실히 하고 있다. “이젠 조금 쉬면서 천천히 일을 해도 될 것 같다”는 주변의 만류에 “시간이 부족해 못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쉽니까”라고 반문하는 김 씨. 그는 전문 농사꾼으로 미를 창조하는 도배지기로서 자신있게 삶을 채워가는 당당한 ‘부산댁’이 아닌 월평리 아줌마로 터를 확실히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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