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을 일구는 여성
영광을 일구는 여성
  • 박은정
  • 승인 2005.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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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 엮으며 세상의 시름도 함께 엮어 나갔다"
산더미 같이 쌓여진 굴비들을 가지런히 엮고 있는 ‘역걸이 아줌마’유소임(52)씨.
그를 만나 엮어진 굴비처럼 차곡차곡 쌓아온 지난 세월의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함평이 고향인 유 씨. 그는 기관지 천식으로 건강이 안 좋아 힘든 일을 할 수 없는 남편과 시어머니, 2남1녀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30대 초반부터 역걸이를 시작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1년 내내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주로 봄에만 역걸이를 하고 일이 없을 때는 새우도 까고 남의 들일도 나가며 그렇게 지냈다”고

지난 세월을 돌이키는 유 씨는 “어렵다 어렵다 해도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는데 지난해부터 확실히 법성의 굴비가게들도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며 “굴비가게가 잘 돼야 우리 역걸이 아줌마들도 일이 많기도 하지만 점점 어려워지는 가게들이 늘고 있어 염려가 많이 된다”고 위축돼 가는 지역경기를 걱정했다.

법성에는 유 씨처럼 굴비를 엮는 아주머니들이 20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들은 고정으로 방문하는 굴비가게들을 돌며 하루에 150∼200두름씩을 엮는다고 했다. 1두름당 300원. 어떻게 보면 괜찮은 수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새벽 4시부터 시작해 하루해가 다 가도록 해야하는 이들의 노고에 비하면 그리 높은 금액은 아닌 듯 싶다.

유 씨는 “명절 같은 대목엔 하루 2∼3시간 밖에 못 자고 일을 하고 겨울에는 손발이 시리는 등 힘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며 “영광굴비의 특징인 굴비를 엮을 때 사용되는 지푸라기는 우리 역걸이 아줌마들이 가을에 준비해 뒀다가 일일이 손질해 1년 내내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역걸이를 하며 가족의 가장역할을 해온 유 씨. 그를 바라본 굴비가게 주인들은 “유 씨는 몸이 불편한 남편과 80세의 시어머니 또한 노환으로 힘든 상황속에서 도 큰 불평 없이 긍정적으로 열심히 생활하고 있어 주변에 귀감이 되고 있다”며 칭찬했다.

“양말하나 못사 신고 옷한벌 못사 입고 힘들게 살아오며 반평생 가까이 굴비만 엮으며 왔지만 그래도 이렇게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순박한 고백을 털어놓는 유 씨는 “이렇게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어렸을 때부터 탈모로 고생하고 있는 내 아들 광철이 때문이다”고 가슴속 깊이 새겨진 아픔을 털어놓았다.

법성 역걸이 아줌마 유소임씨. 그는 힘닿는 한 굴비를 엮으며 가족과 지역을 건강하게 지켜 나갈 것을 약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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