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내려와 남에 정착한 인생 살이
북에서 내려와 남에 정착한 인생 살이
  • 영광21
  • 승인 2017.03.1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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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군후 어르신 / 백수읍 지산리

일제강점기가 끝난 직후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그때 군인으로, 피신하려 혹은 돌아갈 곳을 잃어버려 북에서 남으로 내려와 정착하게 된 사람들이 많았다.
고향이 황해도 옹진군인 박군후(93) 어르신은 남한으로 내려와 백수읍에 정착해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60년이 넘었다.
이북에서 결혼해 아내와 남매 둘을 낳고 기르다 6·25전쟁으로 인해 남한으로 내려오게 된 박 어르신은 전쟁이 끝난 후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남과 북이 분단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박 어르신은 백수읍 지산리에 정착하게 됐다.
혼자만 내려온 것을 평생 한으로 안고 살아온 박 어르신은 그 한을 세월에 묻고 이곳에서 가정을 꾸려나갔다.
박 어르신은 아내와 함께 아들 셋에 딸 하나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았다.
박 어르신은 “북에서 내려와 그때는 아무것도 없어 벌기 위해 고생만 했지. 자식들을 키워 공부도 가르쳐야 했고 재산도 모아야 했어”라고 말한다.
박 어르신은 농사일을 하며 남한에서의 생활도 적응하고 땅도 사고 자식들과 행복하게 살아왔다.
오로지 아들, 딸을 위해 살아온 젊은 시절에는 많은 고생을 했고 지병을 앓았던 아내마저 먼저 세상을 떠났다.
박 어르신은 “그때는 집사람 병을 고치기 위해서 병원도 많이 다니고 약도 많이 사먹었지”라며 “그때 모아뒀던 땅이며 재산이며 다 썼을 거야”라고 얘기한다.
아내가 떠난지 30여년이 흘렀지만 박 어르신의 기억속에는 한없이 착하던 아내 모습이 여전히 떠오른다.
홀로 남은 박 어르신은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몸만 괜찮으면 어떤 일이든 다했다.
80세가 넘어 일을 하기 힘들어지자 대부분의 시간을 경로당에서 보내고 있는 박 어르신은 “우리 아들, 딸도 어느새 나이가 먹어 손주들도 낳고 가정이 있다보니 만나는 횟수가 줄었어”라며 “내 나이 지나간 줄은 모르겠는데 벌써 애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네”라며 웃는다.
“그래도 내가 아프다고 하면 그 멀리서도 다 내려와 약도 사주고 병원에도 데리고 가줘”라고 말한다.
박 어르신은 “이젠 눈도 잘 안보이고 귀도 잘 안들려”라며 “그래도 아직은 혼자 걸어다니고 광주로도 혼자 나가고 밥도 잘 챙겨먹어. 건강 안좋아지고 그러면 죽고 나서나 자식들 곁에 갔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