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고생 뒤로하고 웃으면서 살아야지”
“젊은 시절 고생 뒤로하고 웃으면서 살아야지”
  • 영광21
  • 승인 2017.06.01 10: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덕임 어르신 / 백수읍 천정리

“아침 나절에 논 몇마지기 있는 것 모내기 한다고 옆에서 종종거리다 이제 좀 쉬려고 누워 있네. 뭐 사는 것이 특별한 것은 없어. 그저 자식들과 먹고 살려고 밤낮없이 들에 나가 일했지”라며 반갑게 손을 흔드는 백수읍 천정리 이덕임(82) 어르신.
스물한살 꽃다운 나이에 군서 만금리에서 1살 어린 남편을 중매로 만나 이곳으로 시집온 이 어르신은 작은 체구에도 강단함이 묻어 있다.
“시집오기 전에는 그래도 부모님 그늘 아래 풍족하게는 아니지만 먹고는 살았는데 막상 시집와보니 너무 형편이 어려운거야. 그래서 눈만 뜨면 남편과 같이 일하러 다녔지. 삽질도 남자들이랑 똑같이 하고 부지런히 일하니 젊어서는 돈도 마니 벌었어”라며 고생하던 옛생각에 눈시울을 붉힌다.
몸이 힘든 것도 고생이지만 시집오던 이듬해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된 시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데 딸 일곱명을 낳고 아들을 낳지 못해 마음 고생이 심했던 이 어르신은 42살에 아들을 낳고서야 비로서 숨통이 트였다.
“딸들 들으면 서운할 것인데 딸을 낳을 때마다 시어머니의 노여움에 죄짓는 마음이었는데 늦은 나이에 막내아들 낳아 조상 볼 낯도 생겼지.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매일 일한다고 제대로 한번 챙겨 주지도 못했는데 누구 하나 아픈치레 없이 건강히 잘 자라준 것만 해도 고마울뿐이야”라며 또 눈물 바람이다.
남편과 힘을 합해 일하며 전답도 장만하고 먹고 살만해지나 싶었더니 남편이 59살 되던 해에 백혈병 진단과 함께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아 다시 한번 어려움을 겪게 됐다.
그때 이생에서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남편을 위한 음식을 장만해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고 슬픔을 달랬는데 지금까지 살아 4년전에는 복용하던 약도 다 끊고 기적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제 나이가 들어 1년 식량거리 정도의 논농사만 짓고 있는 이 어르신은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몸이 한해 한해가 달라. 일하고 나면 병원에 가야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살아 있을 때까지는 소일거리라도 꼼지락 해야지”라고 말한다.
“딸이 많아 동서남북 골고루 시집보내 전국을 누비고 싶었는데 모두 서울, 경기도쪽에 살고 있어 아쉬워. 지금도 우리들 같은 노인들 살기좋은 세상이기는 한데 1달에 1번 정도 청소 도우미가 오면 더욱 좋겠어”라고 호탕하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