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문화예술인 89 - 음악가 김희곤
영광의 문화예술인 89 - 음악가 김희곤
  • 박은정
  • 승인 2005.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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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지역사랑 펼친 명 지휘자
“이제 영광에서 음악인생을 정착하렵니다”
한전문화회관에서 한창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그곳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악대부를 지휘하는 김희곤(47) 교사. 검정색 연미복을 차려입고 힘찬 몸짓으로 지휘하는 멋진 모습은 보는 이들의 시선을 머무르게 한다.

현재 해룡고등학교 음악교사로 17년째 재직중인 그는 남원이 고향으로 2남3녀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먼저 바이올린을 시작한 누나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그는 남원에서 서울을 오가며 레슨을 받았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음악인생. 그는 국악을 전공한 외숙으로부터 대금과 단소를 익혔고 중·고 시절엔 줄곧 밴드부 생활을 했다. 그는 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고 대학 졸업 후 교수의 꿈을 안고 원광대에서 조교활동을 하며 전주오케스트라와 원음오케스트라에서 악단으로도 활동했다. 그러던 중 그는 교직을 선택하게 되고 1989년 3월 해룡고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아 오게 되며 영광과 첫 인연을 맺었다.

김 교사는 “처음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농촌 특성상 학생들이 음악을 접할 기회가 없어 음악의 다양한 장르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이 무척 안타깝게 여겨졌다”며 “여러 어려움이 많은 여건이지만 학생들에게 좀더 음악을 가까이 해주고자 광주와 같은 대도시로 데리고 다니며 많은 연주회를 보여주었고 악대부를 만들게 됐다”고 전했다.

이렇게 악대부를 조직하기는 했지만 초기에 겪었던 어려움은 무척 많았다고 한다. 감각과 재능이 있는 학생들은 많이 발견됐지만 아무것도 갖출 수 없는 학생들을 위한 악기지원부터 그들을 지도하기 위해 숙식을 함께 하며 가난한 동거동락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그는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버텼고 그 결과 악대부 출신학생 다수가 음대를 지원하는 높은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 500여개 이상 출연했다는 해룡고 악대부. 이들이 지금은 확실한 위치와 실력을 갖추고 멋진 연주를 선보이지만 오늘날이 있기까지는 김 교사의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진한 노고의 땀방울의 결실인 것이다.

김 교사는 학생들뿐만이 아니고 지역주민들 전체가 음악을 전혀 접하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깝게 여겨 1991년부터 지역에 유명 음악인들을 초청해 음악회를 해마다 열고 있다. 이렇게 시작한 음악회는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했고 지역주민의 호응 또한 매우 높아가고 있다.

음악회가 열릴 때 행사의 사회를 거의 맡고 있는 서민종 동료 교사는 “김 선생은 전공을 바이올린을 했지만 다양한 악기를 모두 잘 다루며 학생들과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어느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며 “그의 추진력과 섬세함은 음악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이뤄냈고 그의 지대한 공은 동료교사와 동문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희곤 교사 그는 훌륭한 음악가 그리고 스승으로서 지역의 음악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소중한 사람이었다. 아내와 슬하에 1남2녀의 자녀를 두고 있는 그는 “가족들의 배려와 지원이 가장 고맙다”며 “영광에서 시작한 제2의 음악인생의 뿌리를 내리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내린 음악나무의 뿌리가 지역에 잘 뻗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는 깊은 애정과 관심의 양분을 충분히 모아주어야 될 것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