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문화예술인 91- 바느질 정오순
“바느질을 하면 얼굴이 밝아지고 마음이 예뻐지는 기분이다”“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것이 재미있고 바느질을 하노라면 서두르던 마음이 차분해진다”는 정오순(57)씨. 그는 40년째 바느질을 하며 한복 집을 운영하고 있다.
고창 공음이 고향인 정 씨는 “어린 시절부터 바느질하기를 좋아했다”며 “손재주가 있었는지 뜨개질도 잘하는 편이었고 4H에서 주최한 뜨개질 대회에 출전해 대상을 받기도 했다”고 지난 시절을 돌이켰다.
정 씨는 17살 되던 해 광주에 있는 한복학원을 다니며 바느질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1남5녀 중 막내딸인 그는 마땅히 기거 할 곳이 없어 친척집을 전전하고 끼니를 건너가면서도 오로지 바느질을 배우겠다는 욕심과 의지 하나로 가족들의 반대를 이겨가며 억척스럽게 바느질 공부를 해 나갔다.
이렇게 어렵게 바느질 기본을 익힌 그의 솜씨는 날로 늘어갔으며 18살 어린 나이에 당시 광주 양동재래시장 비단가게에 취직해 바느질을 오래한 어른들과 나란히 바느질을 하기 시작했다.
결혼 후 군인으로 지내던 남편을 따라 춘천에서 생활하며 제법 규모가 있는 비단가게를 바느질을 하며 직접 경영했지만 제대후 시작한 남편의 사업실패로 영광으로 오게 됐다.
시댁이 홍농 월평리라 홍농댁으로 불리던 정 씨는 도동리에서 홍농한복이란 이름으로 한복집을 열어 한복 수의 모시옷 등을 만들며 지금까지 바느질 인생을 이어가고 있다.
8남매의 둘째 며느리인 정 씨는 자식을 낳지 못한 큰 시어머니와 남편의 어머니인 작은 시어머니를 90세가 넘어 돌아가실 때까지 32년간 정성을 다해 모셔 내무부장관과 군수로부터 효부상를 받기도 했다.
좋아하고 타고난 솜씨로 시작된 바느질로 그는 남편과 1남2녀의 자녀, 시댁식구들의 뒷바라지를 모두 해냈던 것이다.
“한창 바느질이 밀릴 때는 하루 24시간이 아닌 28시간 30시간을 쉬지 않고 일을 했었다”며 “온몸이 쑤시고 손이 마비될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지만 나를 믿고 바느질을 맡긴 손님들의 마음이 고마워 참고 일을 해 나갔다”고 했다.
그는 또 “살면서 힘겨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정성을 다해 한 땀 한 땀 바느질 한 옷을 곱게 차려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낀다”며 “바느질로 이만큼 살림을 꾸려오기는 했지만 한번도 양심을 속이며 무리한 욕심을 내 본적은 없고 마음을 담아 옷을 만들어 왔다”고 전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나 수많은 사람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각고의 자기 헌신이 있어야하며 그래야만 명품을 탄생시킬 수 있다.
정 씨가 만든 특별한날 입는 고운 한복, 여름더위를 식혀주는 모시옷, 마지막 가는 길에 입는 수의 등은 누군가를 위해 정성어린 노력과 헌신으로 만들어낸 결정체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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