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나의 삶을 되찾고 싶다"
"이젠, 나의 삶을 되찾고 싶다"
  • 김광훈
  • 승인 2003.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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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출신 학생운동 최장기 수배자 유영업씨
"가족들이 명절다운 명절을 보낸 적이 없어요. 가장 즐거워 할 때 가장 우울하게 보냈지요. 지금은 가슴 아프게 보내지만 다음 명절엔 가족과 함께 보내겠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민족의 명절이라는 설. 7년 동안 고향인 대마면 송죽마을에 가보지 못하고 또 다시 명절을 맞았던 유영업(29)씨.

유영업씨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7년 목포대 총학생회장을 하면서 학생운동 관련 수배가 떨어진 후 7년째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진 김대중 정부에서도 수배 해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영업씨는 학교로 내려갔다.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최장기 수배자로.

"작년 3월에 내려갔어요. 97년에 광주를 떠난지 6년 5개월만의 일이지요. 그런데 복적을 하려는데 주민등록이 말소된 거예요. 군대 영장이 계속 나오니까 행방불명으로 처리해 아예 말소시킨 거지요."

그는 학생들과 교수 그리고 광주지역의 사회단체 사람들과 어렵사리 직접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증을 발부받았다. 유영업이라는 이름을 되찾는 순간이었다.

자유롭게 내 이름 '유영업'을 이야기하며…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어 바로 휴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10개월간 있었어요. 6년 만에 그나마 정상적인 생활을 한 거지요. 그 동안 꿈꿔왔던 것들을 현실적으로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자유롭게 걸어다니고 '유영업'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수배생활동안 다른 이에게 내 이름을 말할 수도 없고 소개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동안 절실하게 하고 싶었던 게 그리운 사람들 만나고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보냈어요. 수배생활의 가장 큰 피해는 육체적 어려움이 아니라 정신적 피해가 더 큽니다. 사회적 고립감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캠퍼스를 거니는 학우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그리고 정겹게 다니는 연인들의 모습… 이런 것들이 저에게는 너무 행복한 한 폭의 그림 같아요. 지나가는 사람에게라도 말을 걸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너무너무 사람들이 그리워서… 그리고 집과 학교가 37분거리 거든요. 그나마 집과 가까운 거리에서라도 있고 싶어요. 그 37분 거리를 아직도 건너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지된 삶, 이젠 되찾아야겠다
그런 그가 안정적인(?) 학교에서의 생활을 다시금 포기하기는 쉽지 않았다. 다시 한번 정치수배해제 문제를 공론화 시켜야겠다는 결심이었다.

"다시 서울에 올라오려고 하는데 반나절동안 짐을 못 꾸렸습니다. 7년 동안 늘 짐을 쌌지만 이번엔 그리 쉽게 안되더군요. 다른 사람이 꾸려야 하는 짐처럼 모른 척하면서 사람들과 떠들고 컴퓨터도 하고 그랬는데요. 결국엔 내가 꾸려야 하는 짐이다 마음먹고 꾸렸지요. 이런 상황이 너무 버겁습니다." 이내 눈가가 빨개지더니 고개를 숙인다.

그는 서울에 와서 '정치수배해제 모임'을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창살'이라는 까페를 다음(cafe.daum.net/nofree2003)에 개설하고 정치 수배문제를 직접적으로 풀 것을 고민하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통해 그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하고 정치수배 해제 탄원운동을 벌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