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했던 인생 이제는 꽃길만 걸을라네”
“험난했던 인생 이제는 꽃길만 걸을라네”
  • 영광21
  • 승인 2018.03.1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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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순 어르신 / 영광읍 와룡리

‘깔깔깔’ 밖에서도 웃음소리가 들리는 영광읍 와룡경로당에는 어르신들의 수다소리가 정겹다. 마을주민들과 이야기하고 노는 것이 즐거워 매일 경로당에 나오던 백기순(96) 어르신은 얼마전 감기에 걸려 당분간 집에서 쉬고 있다.
96년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백 어르신은 고운 얼굴로 반달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나는 인자 나이 먹을대로 먹었는디 뭐한다고 나를 보러 왔대. 자꾸 나보고 건강하게 살고 있는 장수어르신이라고 여기저기서 찾아와. 그게 뭐 대수라고.”
낭랑 18세, 중매로 3살 연상의 남편을 만나 영광읍 와룡리로 시집온 백 어르신은 녹록치 않은 생활형편에 눈만 마주쳐도 깨가 쏟아지는 신혼생활을 눈물로 시작했다.
백기순 어르신은 “나 어릴 적에는 아버지가 맡겨주면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그냥 살아야 하는갑다 하고 살았어”라며 “시집온게 논 1마지기도 없고 밭만 4마지기 있는디 거기다 뭐 해먹을지도 몰라서 힘겨운 생활을 했어”라고 말한다.
작은 살림에 8남매를 어렵게 키우며 안 해본 것이 없다는 백 어르신은 젊을 적 남편과 함께 벼농사도 짓고 수수, 콩, 팥 작물을 재배해 생계를 유지했다. 흰쌀밥이 귀했던 시절이라 매일 하루 세끼를 수수밥만 먹고 살았다. 이제는 수수 이야기만 나와도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는 백 어르신은 “수수밥만 평생을 먹고 살았어. 지금 생각해도 징하지. 젊을 적에는 도저히 수수밥만 먹고 못살겠어서 매일 밤을 울었어”라고 손사레를 친다.
끝없는 집안일로 힘든 날들도 많았지만 마음씨 고운 남편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이 있었기에 꿋꿋이 참아내며 열심히 살았다.
자식들을 다 객지로 보내고 이제야 편히 남편과 둘만의 인생을 보내던 중 남편 나이 80세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백 어르신은 “한번씩 우리 영감이 생각날 때가 있지. 그래도 자식들이 워낙 효자, 효녀들이라 외로울 틈이 없어”라며 “건너건너에 사는 사돈도 와서 얼마나 많이 챙겨주는지 몰라”라고 말한다.
어르신의 자녀들은 인천, 수원, 서울 등 먼 타지에 흩어져있지만 어머니를 향한 효심이 커 타지에서도 자주 내려와 8남매가 돌아가며 며칠 밤씩 어머니 곁을 지킨다.
“멀리 있어도 이렇게 자주 찾아와서 부모 챙기는 자식들은 몇 없을거야. 울고 웃는 인생, 우리 자식들 덕분에 웃을 수 있어 고맙고 행복해.”
변은진 기자 ej536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