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글 - 호미대학
독자의 글 - 호미대학
  • 영광21
  • 승인 2018.05.1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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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 어디 학교 나오셨어요?”
“나 같은게 핵교는 무슨 핵교다요. 나 핵교 몰라요.” 이리 대답해도 자꾸만 물어와 싸서 “나 호미대학 나왔소.”했더니
“호미대학이요? 그래요! 우리 딸도 호주대학 다니고 있는데 아주머니 참 대단하시네요. 그 연세에 호주까지 유학 갔다 오시고.”
“아니랑께요. 호주대학은 뭔 놈에 호주대학이여. 난 호주대학이 어디가 있는 줄도 모르요. 호미대학이랑게.”
“우리나라에도 그런 대학 있다요. 난 처음 들어본 이름인데.”
그렇다. 처음 들어본 대학이다. 누구나가 다 아는 그런 대학이 아니라 자고새면 밭에 나가 호미로 땅 파고 풀을 메며 평생을 호미만 갖고 살아온 우리 엄니들이 세운 우리 엄니들만의 대학이 바로 호미대학이다.
장마가 끝난 농촌의 들녘은 한층 푸르름이 더해 풍년으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건만 오랜 장마가 머물고 간 논밭에는 잡초도 곡식과 함께 가득해 우리 엄니들 어디로 발길을 돌려야 할지 어디로 손이 가야 할지 모른다.
긴 장마로 풀이 제멋대로 자라 있어서 우리 엄니들의 손길이 어서와 달라고 풀 속에 치인 당신들께서 가꿔 논 당신들의 자식들 아우성 소리를 듣다보면 기나긴 여름해가 짧기만 하다.
요즘같이 태양이 이글거리고 가마솥 찜통 같은 더위인데도 휴가도 방학도 없는 우리 엄니들의 호미대학은 한창 열강중이다. 들바람 산바람이 에어컨이 돼주며 호미가 필기도구이며 너른 들판이 우리 엄니들의 캠퍼스다. 우리 엄니들 묵정밭에 김 메면서도 뭣이 그리 재밌고 신나는지 온 들판이 웃음소리로 가득 채워진다.
오늘의 강의 주제는 우리네 가정사 얘기며 객지에 있는 자녀들의 안부 TV 연속극의 줄거리까지 얘기하며 손으로는 부지런히 잡초를 호미질 해 뽑으며 입으로는 연신 웃음을 자아내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우리 엄니들의 이웃사랑 나눔의 정이 오간다.
햇님도 반가워 함께 따라 활짝 웃으며 새참 때가 됐다고 수다 그만 떨고 새참 드시라 한다. 새참거리로는 엄니들이 직접 기른 옆 고추밭에서 풋고추 몇개 따서 땀으로 범벅이 된 옷에 쓱쓱 문질러 막걸리 한사발에 고추 된장에 꾹 찍어 먹으면 그것이야말로 고급 술집에서 양주에 고급안주 부럽지 않는 우리 엄니들만의 방식이다.
그런 사람사는 사람의 정이 가득한 우리 엄니들 학교는 급제도 낙제도 없는 평생을 다녀도 졸업장도 없는 대학에, 평생 학생으로서 오직 자식들 잘 되기만 바라며 내 몸 부서져도 일만하는 우리네 농촌 엄니들 졸업하는 날은 골다공증과 관절염의 진단서가 졸업장이며, 늦가을 새하얀 서릿발이 종강이며 가을 수확이 학점인 우리 엄니들의 대학 호미대학, 오늘도 우리 엄니들은 호미대학에서 열강중이다.
그런 우리 어머니들의 열정이 있어서 부지런함이 있어서 우리네 농촌이 아직은 살만하고 우리네 자식들 밥상이 풍성하며 맘 놓고 공부하고 산업현장에서 이 나라 가정을 위해서들 열심히 뛸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다.
우리 어머니들 당신들은 비록 땡볕에서 까맣게 그을려가고 일하고 있지만 오직 자식들만큼은 땡볕이 아니라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신사복에 넥타이 쫘악 빼입고 호미가 아닌 팬대 잡고 들판이 아닌 사무실 책상머리 앉을 수 있도록 지식과 지성을 겸비한 좋은 대학 나와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 내 이웃과 내 부모를 사랑할 줄 아는 정 많은 사람 되기를 빌고 또 빌며 농부의 아내로 자식들의 어머니로서 흙에 소중함을 알기에 흙에 감사하며 힘들어도 힘들다 안하시고 “우리 늙은이들은 걱정 말고 너희들이나 잘 살아라” 자식들 안부전화 하면 자식들 다독이시는 든든한 부모님이 계시기에 우리네 자식들은 오늘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 엄니들의 땀과 수고를 먹고 탄생한 농산물, 도시의 주부님들 많이 애용해 주세요.

/ 글쓴이 이 숙(영광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