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실덕! 이거 하나 먹어보소.”, “이것도 한 입 먹어보게나.” 경로당에 도란도란 모여 앉아 간식을 나눠 먹고 있는 마을주민들. 그 사이에 옥실덕이라 불리는 박인근(89) 어르신이 유난히 환한 미소를 띈 채 주민들과 정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염산면 옥실리에서 태어나 옆동네 상계리 남산마을로 시집온 박인근 어르신.
이곳에 살아온 지도 어느덧 70년이 다됐다.
박인근 어르신은 “20살에 동갑인 남편을 만나서 옆동네로 시집왔어. 남편과 쌀, 보리농사도 짓고 슈퍼도 운영하며 1남2녀를 키웠어”라고 말한다.
전쟁으로 모두가 가난에 시달리던 시절이었지만 가게를 운영하는 박 어르신은 평탄하게 젊은 날을 보냈다.
“젊은 시절에는 큰 어려움을 못 느끼고 살았어. 그것도 복이라면 복이지만 내가 사연도 많고 슬픈 사람이네.”
한창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 10살에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의 손에 자라다가 남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수십년 전에 간경화로 남편마저 잃었다.
“참 좋은 양반이었는데 날 두고 일찍 떠나 원망스러울 때도 많았지. 남편은 내게 지금도 보고싶고 그리운 사람이야.”
슬픔이 가기 전에 야속하게도 또 다른 슬픔이 박 어르신에게 찾아왔다. 평소 지병이 있어 건강이 좋지 않던 딸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잘 살고 있던 아들마저 어느 날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일찍 떠나보내야 했다.
“내가 3남매를 길렀는데 지금은 둘을 잃고 딸 1명만 남아있어. 고독하고 한 많은 인생이지만 내 슬픔을 메워준다고 우리 딸이 지극정성으로 참 잘해”라고 얘기하는 박 어르신.
현재 광주에 살며 박 어르신의 곁을 지키는 딸은 매주 목욕도 같이 하러 오고 머리도 해주러 오는 등 수시로 드나들며 어르신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옆에 있던 마을주민들은 “딸이 엄마한테 말도 못하게 지극정성이야. 머리도 해주고 같이 밥도 먹고 집안일도 돕고 온갖 이유로 옥실덕 안부를 살피러 와. 이 마을 사는 사람들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네”라고 입을 모은다.
벌써 환갑이 돼버린 딸이지만 자신의 건강보다는 박 어르신의 건강을 끔찍이 여긴다.
박 어르신은 딸의 효심으로 지난날은 가슴에 묻은 채 행복을 품고 살아간다. 평소에는 경로당에 나가 마을 어르신들과 식사도 함께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나름대로의 즐거운 노년을 보내고 있다.
박 어르신은 “지금처럼 조그마한 일에도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어. “손주들 모두 잘되고 딸이랑 함께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최고 바람이야”라고 말한다.
변은진 기자 ej536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