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길”
“5·18민주화운동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길”
  • 영광21
  • 승인 2018.05.1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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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유공자 - 김인윤 씨 / 영광읍

1980년 5월18일 민주화를 열망하던 시민들의 함성이 독재정권의 시퍼런 군홧발에 짓밟힌 지 38년이 지났다. 5월18일 그날 그 현장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편집자 주

“그날 광주를 생각하면 지금도 분개합니다. 구사일생으로 참혹한 현장을 빠져나왔지만 38년이 지난 지금도 때때로 그날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고 피해자들만 고통받는 현실이 너무나도 비참합니다.”
아직도 38년전 그날이 어제 일처럼 생생한 김인윤(59)씨. 영광읍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그는 21살 젊은 나이에 우연히 끔찍한 광주의 참상을 목격했다. 짧은 순간이나마 그가 목격한 야만스러운 시대의 초상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영광읍에서 일손을 돕던 젊은 날의 청년 김인윤씨는 필요한 물건을 사기위해 광주에 들렀다.
당시 광주에서는 서울의 봄의 영향으로 민주대성회라는 이름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고 영광출신으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이던 박관현 열사가 전남도청앞에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연설을 하던 시기였다.
그날 김인윤씨는 광주버스터미널에서 군인들이 총과 몽둥이를 들고 여성과 어르신들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계엄군의 행동을 보고 시민들이 분개했어요. 저도 그중 한명이었죠. 군인들을 말리려고 했지만 계엄군은 오히려 시민들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습니다. 개머리판에 머리를 가격당하고 3시간 동안 정신을 잃었어요.”
정신을 잃고 사경을 헤맨 김 씨는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영광지역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그날 계엄령이 선포되던 마지막 순간 운 좋게 광주를 빠져나온 몇 안되는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방송을 통해 온갖 왜곡된 보도가 흘러나왔습니다. 저는 그날 그 현장에 있었고 제 눈으로 똑똑히 본 광경이 언론을 통해 왜곡되고 조작되는 것을 봤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인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참담한 현실에 분개한 김씨는 전두환과 노태우의 재판을 1여년이 넘게 쫓아다녔다. 그러나 결국 가해자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그날의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다.
김 씨는 “지금까지도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 참담한 심정을 느낍니다. 선거철에만 광주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말하는 후보자들이 정말 관심을 갖고 5·18 바로세우기에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고 말한다.
김진영 기자 8jy@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