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며느리 덕에 이제는 편히 살아”
“아들 며느리 덕에 이제는 편히 살아”
  • 영광21
  • 승인 2018.05.1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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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님 어르신<영광읍>

“나 젊었을 때 어찌나 고생을 했는지 어디에 말도 못할 정도여.”
6·25를 겪어 가난한 가정형편 탓에 일찍 결혼해 남편의 고향인 백학리에서 60여년의 세월을 보낸 김양님(81) 어르신.
영광읍 학정리가 고향인 김 어르신은 21살에 8살 연상의 남편을 만나 5남매를 낳아 기르며 고된 삶을 살았다.
김양님 어르신은 “사촌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는데 나보다 8살이나 많은 줄도 모르고 시집을 갔어”라며 “그 당시에는 시집가기 싫었어도 아버지가 나를 몹쓸 곳에다 보내진 않았을 거다 하는 마음으로 포기하고 살았네”라고 말한다.
그렇게 인생의 동반자로 맞이한 남편이었지만 시집와서 보니 남편은 제대로 일다운 일을 하지 못했다.
“남편이 영광에서 백구두로 유명했었어. 키도 크고 잘생기고 멋쟁이였지. 그래서 그런지 일다운 일을 하지 못해서 내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어.”
일이라면 무섭게 생각하는 남편이기에 가장의 역할까지 대신해야 했다. 아이들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이자 가정의 기둥역할까지 해야만 했던 김 어르신에게 젊은 나날은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
“나 고생했다는 소리는 말도 못해. 그때는 남편을 생각하면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토끼 같은 자식들 때문에 못가고 지금까지 살고 있네.”
벼농사, 밭농사, 장사, 식당 일 등 안 해본 것이 없다는 김 어르신은 고된 삶에도 자식들에게 하나라도 더 좋은 것을 입히고 먹이기 위해 이 악물고 살아왔다.
그런 탓인지 현재 김 어르신의 별명은 만물박사다. 안 해본 일이 없는 김 어르신에게 마을주민들이 지어준 것이다.
주민들은 “이 양반은 못하는 게 없어. 농사도 지어보고 장사도 하고 종합병원서 식당일도 했는데 음식솜씨가 아주 기가 막혀”라고 입을 모은다.
주민들의 칭찬세례에 몸 둘 바를 모르며 손사래를 치는 김 어르신. 젊은 날 고된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은 경로당에 나와 주민들과 재미삼아 화투도 치고 간식도 함께 먹으며 평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고생만 하다가 지금은 맨날 먹고 노니까 나는 지금이 제일 행복해”라는 김 어르신은 “8년전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서 지금은 우리 아들이랑 며느리랑 같이 살고 있어. 며느리도 잘하고 아들도 잘하니 편하게 살고 있네”라고 말한다.
이제는 걱정거리 없이 오로지 자식들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김 어르신.
“자식들 다 잘됐는디 지금 한명이 아직 장가를 못가서 걱정이야. 하늘에 있는 우리 남편이 도와주길 매일 기도해”라는 김 어르신은 “앞으로도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남에게 해 안 끼치고 바르고 건강하게 노후생활을 보내고 싶어”라고 얘기한다.
변은진 기자 ej536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