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리 마을서 두 번째로 왕언니야”
“내가 우리 마을서 두 번째로 왕언니야”
  • 영광21
  • 승인 2018.05.25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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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순임 어르신<홍농읍 진정리>

“17살 어여쁜 나이에 이 마을로 시집와서 70년을 넘게 살았어. 지금 시대에는 한참 얘기제. 그땐 어떻게 엄마가 돼서 애낳고 살았는가 몰라.”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소리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한적한 홍농읍 진정마을.
이 마을에 발 디딘지도 70년 세월이 지나 이제는 둘째 왕언니로 불리는 안순임(92) 어르신.
법성면 발막마을이 고향인 안 어르신은 1살 연상의 남편을 만나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안 어르신은 “내 남편은 성실한 사람이었어. 가족들 먹여 살린다고 얼마나 열심히 일하며 자기 일생을 바쳤는지 몰라. 언제나 보고 싶고 고마운 사람이야”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이에 시집와서 벼농사도 짖고 소도 키우며 딸 둘, 아들 셋을 키웠다.
“나 시집오니까 아들이 남편 하나였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어머니, 시아버지 두분 다 돌아가셔서 나랑 남편이랑 서로 의지하고 살았지.”
그렇게 20년 남짓한 시간을 함께 해오며 서로밖에 없었던 부부였지만 남편이 40살이 되던 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몹쓸 병은 아니었어. 지금 같았으면 의료기술이 좋아서 나았을텐데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허무하게 내 곁을 떠났어”라는 안 어르신은 “나랑 같이 애들 이쁘게 잘 키우고 이 마을에서 장수하기로 약속했는디. 지금 살아있었다면 올해 93살일 테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함께해 온 20년 세월보다 혼자였던 시간이 훨씬 많았지만 여전히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지우지 못한 채 살아간다.
안 어르신은 “베도 짜고 밭도 메며 남편의 빈자리를 메웠지. 그래도 살아있을 적 성실히 살아온 남편 덕에 내가 고생은 안하고 살았네. 시집살이도 없었고 나 정도면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한 삶이었어”라고 말한다.
집과 경로당이 가까워 지금은 매일 경로당에 나와 오랜 세월 함께해 온 둘도 없는 마을 동생들과 여생을 함께 보내고 있다.
“이제는 밥 잘 해먹고 마을 동생들이랑 친하게 지내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다지. 얼마 전까지는 경로당에서 건강교실을 열어서 요가도 배우고 재미났어.”
마을주민들은 안 어르신을 보며 아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팔팔하게 운동도 하며 일도 잘 한다고 입을 모은다.
마을주민들은 “밥도 혼자 다 해먹고 우리보다 더 짱짱해. 이 양반이 우리 마을에서 두 번째로 장수하고 있는 둘째 왕언니야. 젊고 아직까지 일도 잘하고 미모도 으뜸이야”라고 말한다.
안 어르신은 “이제는 자식들 다 키워서 마음도 평안하고 행복해. 자식들이 스스로 벌어 먹고 재미나게 사는 거 보면 더 바라는 것도 없어. 지금처럼만 행복하게 살고 싶네”라고 얘기한다.
변은진 기자 ej536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