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전 열일곱 소녀가 기억하는 6·25
73년전 열일곱 소녀가 기억하는 6·25
  • 영광21
  • 승인 2018.06.0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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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 어르신<백수읍 죽사리>

"17살때 6·25를 겪었어. 그때는 여기저기서 총소리가 들리고 난리도 아니었어. 총소리가 들려오면 어딘지도 모른 채 어디든 담박질해서 도망가고 했던 게 기억나. 그렇게 피란 생활을 2년이나 했네.”
갑작스런 전쟁에 놀라 잠 한 숨 제대로 못 자던 17살 소녀는 어느덧 90살의 할머니가 됐다. 정 만(90) 어르신은 일생에서 가장 큰 사건으로 73년전 그날을 손꼽아 기억한다.
“그 당시 영광에는 어딜 가든 군경들이 깔려 있었어. 얼마나 굶었는지 손가락만 쪽쪽 빨던 게 생생해. 그렇게 쫓기고 쫓기며 살다가 휴전한다는 소식에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70년 세월이 넘었지만 그때 그 시절이 머릿속에 생생하다.
영광읍 계송리에서 태어나 16살때 중매로 6살 연상의 남편을 만나 백수로 시집을 왔다.
결혼 후 1년만에 전쟁을 겪어 제대로 된 신혼생활도 보내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두려움 속에서 떨어야만 했다는 정 어르신. 그렇게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어렵게 되찾은 보금자리에서 딸 셋, 아들 하나를 낳고 안락한 가정을 꾸렸다.
“남편은 농사일을, 나는 베 짜는 일을 많이 했어. 옛날에는 목화도 심고 모시도 심어서 여름에는 모시옷을, 겨울에는 면 옷을 지어 입었지. 직접 베를 짜서 만들어 입었네.”
베 짜는 일과 더불어 남편과 함께 벼농사도 짓고 콩, 팥 등 밭작물도 재배하며 넉넉하진 않더라도 부족함 없이 자식들을 가르치며 살았다. 
“우리 남편은 생전 남의 것 탐내지 않고 자기 것에 만족하며 살았어. 돈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닳아진다고 쓰지도 않고 검소하게 생활했지. 그렇게 모은 돈으로 부족함 없이 자식들 다 가르쳤네.”
60년 세월동안 기쁨, 슬픔, 행복을 나눠온 남편은 8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지병을 앓고 있었다.
“나 혼자 된지는 벌써 13년이 됐네. 술, 담배로 속 썩이는 일 없이 평생 잔소리 한번을 안 한 사람이었어. 일생을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네.”
무섭고 배고파서 힘들었던 젊은 날이었지만 노년의 지금은 매일 감사함 속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나라에서 나 젊은 날 고생했다고 노후 생활비도 챙겨줘서 얼마나 고마워. 나는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라 6·25를 잘 모르는 요즘 젊은이들이 무척 안타까워. 우리나라가 어느 날 갑자기 잘 살게 된 게 아니라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모든 국민이 생각했으면 좋겠어.”
이제는 몸도 마음도 편해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정 어르신은 자식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 외에는 바랄 것도 없다고 말한다.
“마을 식구들이랑 어울려 사는 즐거움에 매일이 행복해. 자식들도 다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을 보내면 좋겠어.”
변은진 기자 ej536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