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 덕분에 호주도 가보고 출세했지”
“자식들 덕분에 호주도 가보고 출세했지”
  • 영광21
  • 승인 2018.07.0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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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전 어르신<홍농읍 단덕리>

“80년 세월 속상한 일 말하려하니 책을 써도 모자라것네. 그래도 지금은 자식들 덕분에 최고로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고 있어.”
갑작스런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상황을 맞이하게 된 어린 시절, 넉넉지 못했던 가정형편 탓에 임순전(86) 어르신은 19살 꽃다운 나이에 부랴부랴 결혼을 했다.
“피란생활도 많이 하고 고생 겁나 했어. 전쟁으로 집이 불에 타버려서 살데가 있어야지. 온 가족이 남의 집 웃방에서 얹혀살게 됐어. 신세지고 사는 게 미안해서인지 아버지가 어린 나이에 일찍 시집을 보내셨어.”
5남3녀 중 둘째로 태어난 임순전 어르신은 한살 연하의 남편과 결혼해 딸 여섯 아들 둘을 낳아 키웠다. 벼농사도 짓고 콩농사도 지으며 단란한 생활로 가정을 꾸려 나갔다.
임순전 어르신은 “8남매 낳아서 아등바등 살면서도 자식들 자라는 모습 보는 게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어. 지금은 둘도 안 낳으려고 하는 세상인데 그땐 어떻게 여덟명이나 낳았는지 몰라”하며 웃는다.
남편은 마을을 위해서 30년간 이장으로 봉사하는 등 성실하고 올곧은 사람이었다.
“영감이 마을 일이라면 뭐든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었어. 그래서 오히려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지금이라면 누구 밥해주는 건 일도 아닌디 그땐 참….”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 1970년대는 나락도 절구통에 찧어먹고 냉장고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남편은 종종 집에 마을주민들을 초청했다. 그때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며 손님들을 대접했다는 임 어르신.
“이장하면서 동네서 10원짜리 하나도 탈내는 일이 없어서 사람들이 영감을 신뢰하고 좋아했어. 나는 그런 남편 뒷바라지 하며 고생 솔차니 했네.”
힘들 때도 많았지만 언제나 임 어르신의 편이었던 든든한 남편은 그의 나이 70세가 되던 해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임 어르신은 “미우나 고우나 내 사람인지라 없으니 보고 싶을 때도 많네. 그래도 자식들이 곁을 채워주니 외로울 틈 없어”라고 말한다.
광주, 서울, 호주 등 먼 타지에 살지만 매일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하며 어르신을 보살피는 자녀들과 손주들이 있기에 행복하다.
“내 살다보니 이제 자식들 덕분에 호강하네. 지난해까지만 해도 매년 겨울에 자식들이 사는 호주에서 몇개월씩 있다 왔어. 호주 사람들은 서로 인사도 잘하고 얼마나 친절한지 몰라. 나는 그래도 한국이 좋아. 의사소통이 안 되니까 얼마나 답답한지.”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임 어르신은 “이 세상같이 좋은 세상없어. 이제는 내 몸 건강하고 자식들 행복하게 사는 것 말고 바라는 것 없네”라고 말한다.
변은진 기자 ej536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