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으로 번성했던 우리 마을”
“5일장으로 번성했던 우리 마을”
  • 영광21
  • 승인 2018.07.1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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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 군남면 포천1·2리

 

오랜만에 바쁜 농사일을 뒤로하고 마을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주민들이 모였다.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정을 나누기에 한창인 군남면 포천1·2리(이장 황순님·노세진) 주민들.
죽신, 포천 등 2개의 자연마을로 이뤄진 군남면 포천1리(이장 황순님)는 90가구에 20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양지, 포천 등 2개의 자연마을로 이뤄진 포천2리(이장 노세진)는 120가구에 270명의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주민들은 여느 마을과 같이 벼농사, 보리, 콩, 고추, 양파농사를 지으며 단란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
죽신마을은 마을이 번창해 산 아래로 내려오면서 마을이 새롭게 태어나 죽순처럼 무성하다해 죽신이라 했다.
양지마을은 햇볕이 잘 드는 땅이라 해 양지라고 불렀다.
포천마을은 경주최씨의 21대손 최철윤이라는 사람이 입주해 1920년 반안리 구 장터에서 화적 때문에 포천으로 시장을 옮기게 돼 그 후 마을이 이뤄졌다. 원래 하나였던 포천리는 1980년대에는 5일시장의 일부와 양지마을을 포천2구로 분구했다.
마을주민들은 “우리 마을이 굉장히 큰 마을이었습니다. 70~80년대 인구가 엄청 났죠. 포천 5일시장이 있을 정도로 번성한 마을이었습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젊은 인구 농촌 유입 대책 시급
그렇게 북적였던 포천리가 인적이 드문 조용한 마을로 전락한 이유는 뭘까.
마을주민들을 “산업화시대에 접어들면서 미맥위주의 농업에 치중돼 있던 농촌에 사람들이 더 이상 머물지 않고 다 외지로 떠났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세월이 흘러 교통이 발달되면서 통행이 불편했던 도로는 매끈하게 포장되고 더욱 빠르게 변화됐다.
때문에 모든 생활권이 영광읍내로 집중됐다. 대부분의 인구가 읍으로 빠져나가고 면단위 시골에는 농업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주민들만 남았다.
포천1리 황순님 이장은 “외부로 나가기만 하지 들어오는 사람은 없어요. 자꾸만 줄어드는 마을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작은 읍·면 단위에도 젊은 인구가 들어와 살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지역에서 좋은 대안이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
포천 1·2리 이장은 올해 1월부터 마을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신임이장이다. 두 이장은 마을주민들의 의견을 통합시켜 마을을 한 마음으로 이끌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이에 1·2리 주민들은 마을회관도 함께 쓰며 밥도 해먹고 마을 일도 논의하며 정을 나눈다. 하지만 많은 주민들이 애로사항을 겪고 있는 부분도 있다.
두 이장은 “주민들이 모여 화합을 이루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 기쁩니다. 하지만 마을회관 내에 화장실이 없어 어르신들이 불편함을 겪습니다. 주민들의 불편함이 해소되고 더욱 편하게 오래 머무르며 쉼을 누릴 수 있도록 회관 내에 화장실이 조성되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

 

황순님(69) / 포천1리 이장

우리 마을이 70~80년대에는 많은 인구가 거주한 번성한 마을이었습니다.
자꾸만 줄어드는 우리 마을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작은 읍·면 단위에도 젊은 인구가 들어와 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노세진(70) / 포천2리 이장

주민들이 모여 화합을 이루고 쉴 수 있는 마을회관이 있어 기쁩니다. 하지만 회관내에 화장실이 없어 어르신들이 불편함을 겪습니다.
주민들의 불편함이 해소되고 오래 머무르며 쉼을 누릴 수 있도록 회관내에 화장실이 조성되면 좋겠습니다.

 

이춘래(75) / 노인회장

우리 마을은 포천 5일 시장이 있을 정도로 사람 냄새 가득한 마을이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이 더 이상 농촌에 머물지 않고 외지로 떠나버렸습니다. 아이 울음소리도 듣기 어렵게 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