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 어찌나 고생했는지 옛날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어.”
달음박질치듯 다가온 무더위는 꺾일 줄 모르고 펄펄 끓는듯한 한낮의 뙤약볕이 몹시 뜨겁다.
경로당에서 마을주민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무더운 열기를 이겨내고 있는 박양님(81) 어르신.
힘들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절로 눈물이 난다는 박 어르신은 21살에 5살 연상의 남편을 만나 법성면 대덕리로 시집을 왔다.
“예전엔 어느 누가 안그랬겠냐만은 정말로 힘들었어. 먹고 살기 위해서 안 해본 일이 없어. 지겨운 가난과 힘겹게 싸우다보니 어느새 손 마디 마디가 온통 주름투성이가 됐네.”
2남2녀 자녀들을 부양하기 위해 논농사며 밭농사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는 박 어르신. 힘들었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면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다. 그렇지만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남편과 자식들은 큰 버팀목이 됐다.
“힘든 세월이었지만 그래도 영감하고 자녀들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어. 없는 살림에 서로 부둥켜안고 힘든 시절을 이겨냈지.”
투박한 박 어르신의 손은 작은 몸으로 집안의 버팀목이 되어야만 했던 한 맺힌 시절을 대변하는 듯하다.
“지금은 그래도 농사 지으며 이웃들과 힘들었던 시절을 털어놓을 정도로 옛 이야기가 됐어. 그렇지만 이제는 영감님이 아파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병치레하는 남편을 부양하기 위해 남들보다 늦은 나이까지 일을 해야 했다는 박 어르신.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못하지만 남들 은퇴했을 나이에도 굴비가게에서 일을 했어. 나도 나지만 아픈 영감도 고생 심했지.”
그래도 이제는 경로당에서 요가도 하고 지역주민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며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다.
지금은 외지로 나간 자녀들도 매일 연락하며 안부를 묻고 명절이 아닐 때에도 박 어르신을 자주 찾아온다.
하지만 박 어르신은 많은 연세에도 자신보다 자녀걱정이 늘 앞선다.
“첫째 아들이 몸이 성치 않아서 많이 걱정돼. 앞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자식들이 건강하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또 힘들었던 시절을 이겨낸만큼 노후에는 마을주민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조금이라도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네.”
김진영 기자 8jy@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