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불갑산상사화축제 기념 인터넷공모전 수상작
2018 불갑산상사화축제 기념 인터넷공모전 수상작
  • 영광21
  • 승인 2018.11.0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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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상 수상작 - 박영득 / 서울특별시

길상사에 핀 상사화

첫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성북동 길상사를 찾았다. 알몸으로 겨울을 버티고 서있는 느티나무들과 짙은 푸름으로 청초함이 돋보이는 비자나무 아래 군데군데 파란 상사화 잎들이 눈 속에서 가까스로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복히 쌓이는 눈은 금방 그 잎들마저도 모두 덮어버릴 것만 같았다. 지난 여름 우연히 상사화 사진을 찍으며 알게 된 백석과 자야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첫눈이 내리면 다시 이곳에 와 그들의 애절했던 사랑을 느껴보리라 다짐했었다. 이들의 운명적인 사랑을 생각하면서 텅 빈 적묵당 툇마루에 앉아 펄펄 내리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지난 늦은 여름 길상사에 상사화가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으로 나섰다. 상사화는 함평 용천사나 영광 불갑사 또는 고창 선운사에 가면 마음껏 볼 수 있지만 너무 멀어서 주저하고 있던 참이었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 올라서자 길섶에 빨간 상사화들이 돌 틈사이로 듬성듬성 보이더니 극락전 마당아래 서있는 늙은 느티나무 아래에 한 무리의 상사화가 가득피어 늦게 찾아온 날 반겨주었다.
이런 도심에서 보기 드문 꽃이라서 나도 상사화에게 고맙고 반가운 마음에 인사라도 하듯 엎드려 자세를 낮춘 채 접사사진을 찍으며 깊은 무언의 대화를 나눴다. 새빨간 바소꼴의 상사화는 여섯장의 꽃잎과 가늘고 기다란 여섯개의 수술, 그리고 수술 끝에는 연한 붉은 색을 띤 커피원두모양의 꽃밥들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어디를 보아도 잎은 없고 기다란 꽃대와 꽃봉오리뿐, 꽃이 지고나면 잎이 돋아난다는 것이다. 꽃과 잎은 결코 만날 수 없어 꽃말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고 한다.
극락전 옆 침묵의 집을 조금 지나니 자야가 거처하던 길상헌과 법정스님이 거처하시던 적묵당에 이르는 길 양옆으로 더 많은 상사화가 가득 피어있었다. 늦여름 우거진 느티나무와 비자나무 숲 사이로 찬란한 빛살이 상사화 꽃 무리에 축복처럼 쏟아져 내렸다. 내려오는 길에 길상헌 뒤편 다리를 건너니 조그마한 공덕비 하나가 세워져 있었고, 그 곁에는 공덕자 김영환님의 생애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 한편을 적은 표지판이 서있었다.
자야는 왜 하필이면 유골을 눈이 내리는 날 이곳 길상사에 뿌려달라고 했을까? 공덕비의 내용으로는 자야에 대한 궁금증을 다 풀 수가 없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봐도 신통치 않았고 오히려 자야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를 더욱 종잡을 수 없게 했다. 자야의 자서전 형식의 수필집 <내 사랑 백석>을 구해서 읽어 보았다. 그의 진솔한 사연을 읽어가면서 이런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우리가 살던 이 시대에 있었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책장을 넘길수록 더 깊이 난 자야와 백석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지금까지 내 가슴에 세여자가 자리 잡고 있다. <파천무>에서 김종서가 사랑했던 설리雪理라는 오랑캐 출신의 여인, 서화담이 좋아하고 사랑했던 황진이 그리고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정화섭의 가냘프고 아름다운 여인 소화素化였다. 그런데 자야와 백석의 사랑이야기를 접하니 이젠 나의 가슴 가장 큰 자리에 자야가 자리 잡을 것 같다. 그녀의 일생을 더듬어 본다.
일제강점기인 민족사의 암흑기에 태어나 16세의 어린 나이로 가정형편상 금하琴下 허규일 문하에서 진향眞香이란 이름을 받아 기생으로 입문했다. 스승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에 일본 동경에서 공부하다말고 교도소를 찾아 갔다가  함흥 영생보고 영어교사인 천재시인 백석과 우연히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그로부터 자야子夜라는 아명雅名을 받았다. 이 두 사람은 약 3년 정도의 길지 않은 세월동안 함흥과 서울 청진동에서 사랑을 나누게 되고 만주로 떠난 백석은 남북분단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운명에 빠지게 되었다. 그녀는 홀로 사랑하는 임을 그리며 거의 60여년의 세월을 그리움과 눈물로 한 세상을 살아갔다. 성북동 배 밭골을 사들여 이곳에 대원각이란 한식식당을 지어 운영하던 차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 받아 생의 가장 아름다운 회향을 생각하고 7,000여평의 대원각 터와 40여동의 건물을 절로 만들어 주기를 청하였다. 대원각이 ‘맑고 향기로운 근본도량 길상사‘로 창립되는 법석에서 그녀는 법정스님으로부터 염주 한벌과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받았다. 길상화 보살이 된 그녀는 “나 죽으면 화장해서 눈이 많이 내리는 날 길상헌 뒤뜰에 뿌려 주시오”라는 유언을 남기고 1999년 11월14일 육신의 옷을 벗었다. 다비 후 그녀의 유골은 49제를 지내고 첫눈이 온 도량을 순백으로 뒤덮던 날 길상헌 뒤쪽 언덕바지에 그녀의 유언에 따라 뿌려졌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는 사랑을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홀로 쓸쓸히 앉아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중략〉
 백석, 「백석 시선집」
자야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백석의 그 진실한 사랑의 환상에 빠지곤 했다. 그래서 그녀는 틈만 나면 이 시를 읽고 또 읽고 했다고 고백한다.  그 시를 읽노라면 젊었을 때 백석과의 사랑하던 시절로 돌아가는 무슨 주문과도 같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한 기자가 이 많은 재산을 절에 기부하고도 아깝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자야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이런 것은 백석의 시 한줄보다도 못해’라고 그리고 다시 태어나도 한국에서 태어나겠냐고 묻자‘ 난 영국에서 태어날거야. 내가 좋아하는 시도 쓸 수 있게.’ 이제 자야가 유언에 왜 유골을 화장해서 눈 오는 날 길상헌 뒤뜰에 뿌려달라고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천독만독千讀萬讀의 독경讀經보다 당신의 순정이 그대로 서려있는 시 한수! 이것이야 말로 나 혼자 쓸쓸히 돌아가야 할 명도冥道에 진실로 크나큰 선물이 아닌가 합니다. 저에겐 다시 더 바랄 아무런 것이 없습니다. 흰 당나귀 타고 당신 곁으로 떠나가는 자야! 오직 흐뭇하기만 합니다. 영광스럽기만 합니다.
김영환, 「내 사랑 백석」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 어쩜 상사화의 꽃말처럼 자야와 백석은 짧은 사랑과 긴 이별 속에서 결코 만날 수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서로 그리워하며 한 세상을 살다간 아픈 이 시대의 희생양이었으리라. 상사화가 꽃과 잎이 서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것처럼  이들의 사랑도 함께 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이렇게 하얀 눈이 푹푹 내리는 밤에 빨간 상사화가 이곳 길상사에 활짝 피어나 잎과의 만남을 한번이라도 다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해 저물어갈 때 쯤 비둘기 한쌍이 마당을 두어 바퀴 휙 날아돌더니 적묵당 뒤뜰 비자나무가지에 날아들고, 극락전 처마 끝 풍경 소리도 한 많은 여인의 가냘픈 한숨처럼 내 귓가에 나직히 들려왔다. 저녁예불 목탁소리와 염불소리도 점점 더 빨라지고,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은 푹푹 길상사 뜨락에 쌓여 가고 있었다.
 

■ 금상 수상작 - 신금철 / 충북 청주시

천상재회

붉은 광장이다. 연둣빛 가녀린 꽃대에 빨간 모자를 쓴 상사화가 목을 길게 늘이고 그리운 이를 기다린다. 꽃무덤을 이루고 긴 기다림으로 서있는 그들이 행여 그리움에 지칠까 애처롭다. 꽃나비가 되어 그들의 그리움을 달래주고 싶다.
해마다 이 맘 때면 불갑사를 향해 달린다. 일요일인 오늘, 불갑사는 인산인해를 이뤄 경내에서 떨어진 먼 거리에 주차한 후 셔틀버스를 이용했다. 인파 속을 헤치며 만난 상사화는 화려함 저 깊은 곳에 슬픔을 안고 있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상사화는 세속의 여인을 사랑하여 말 한마디 못한 스님의 애절한 사랑의 전설을 따라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남겼다. 잎이 나와서 다 시든 다음에야 꽃대가 올라와 피어나니 평생 만날 수 없는 슬픈 운명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할 뿐, 만날 수 없는 슬픈 사랑의 전설이 있어 보는 이들은 그 고운 꽃을 아픔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사랑은 아름답다. 그러나 만날 수 없는 사랑은 슬픔을 동반한다.
무리 지어 피어있는 상사화를 뒤로 하고 대웅전으로 향한다. 한적한 숲 속 상수리 나무 밑에 다소곳이 피어있는 두송이의 상사화가 나를 반갑게 맞는다. 마치 내 어머니 같은 꽃이다. 어머니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분이셨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보다는 조용한 곳을 좋아하셨고, 참음과 배려심이 많으신 고운 분이셨다.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한다. 어머니는 열일곱 살에 아버지와 부부의 연을 맺고 스물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다. 대학을 갓 졸업했을 앳된 나이에 남편을 잃었으니 땅이 꺼지는 슬픔과 함께 앞으로의 삶이 두려우셨을 게다. 그렇게 어머니는 세상에 두 살배기 딸과 단 둘이 되셨다. 떠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87세까지 상사화로 사시며 혈육인 외동딸 하나를 고운 꽃으로 키우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나는 슬픔 속에서도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버지와 천상재회天上再會로 이승에서 못 다한 사랑을 나누시길 바라며 슬픔을 달랬다. 저 세상을 모르기에 두분이 만나셨는지 알 길이 없지만 두분이 재회하여 행복하게 지내시는 모습을 상상한다. 가끔씩 어머니가 혼자 남겨두고 일찍 떠나신 아버지를 원망도 하시고 그동안 고생하신 수고에 칭찬도 해달라고 어린애처럼 떼도 쓰셨으면 좋겠다. 여니 부부처럼 다정하게 손잡고 여행도 다니시고 부부로서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시며 다시는 헤어지지 않으시길 매일 기도한다.
그리운 어머니와 두살때 돌아가신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다정히 손잡고 상사화로 피어나 나를 향해 웃고 계신다. 환영으로 보이는 두분의 모습이 너무도 다정하여 조용한 미소를 짓는다.
상사화의 아름다운 전경 사진을 찍고 있던 남편이 나를 향해 렌즈를 맞추고 있다. 나는 양손을 올려 하트로 포즈를 취하고 사랑을 날렸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있어 행복하다. 아니 어머니의 행복한 모습을 상상하며 더 행복하다. 사진을 찍는 남편을 따라 사계절 아름다운 곳을 누빈다.
샛노란 유채의 해맑음, 황홀함에 취하게 하는 분홍빛 진달래, 하얀 옥양목 치마를 입은 어머니처럼 청순한 메밀밭, 어머니를 만나는 슬픈 전설의 상사화, 고운 단풍 그리고 설국의 아름다움까지 사계절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텔레비전의 큰 화면에 비춰보는 즐거움은 황혼에 접어든 우리 부부의 낙이다. 그와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행복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재혼의 유혹을 뿌리치고 혼자 몸으로 나를 키우시느라 무던히 많이 흘리셨을 어머니의 땀과 눈물 덕분이다. 어머니의 생전에 효도를 못했음에 후회가 깊다. 항상 어머니는 내 마음 속에 상사화로 피어있다. 어머니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시간은 아름답지만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사랑은 곁에서 함께 나누어야 더 행복하다.
평생 그리움를 안고 살아가는 상사화가 가엾다. 영원한 이별의 사랑이 애처롭다.
상사화의 꽃대 밑에 사랑의 잎을 달아 그들을 동여 매주고 싶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천상에 계신 아버질 만나 행복한 모습을 상상하듯 가녀린 꽃대를 감싸 안은 파란 잎과 한몸이 되어 활짝 웃는 상사화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대웅전에서 불경을 외우는 스님의 목탁소리가 슬프게 들리고 그 모습이 외로워 보인다. 스님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초월하여 상사화의 아픔을 겪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 은상 수상작 - 김영희 / 대전광역시

불갑산 상사화

사랑을 피운 꽃 이야기
  불갑산 숲길에 가면
  애잔한 속삭임에
  엷은 가슴 가득
  눈물이 고이는 9월

송이송이 아픈 이야기
  솟대처럼 속은 기다림은
  잎을 감춘 채
  푯대 끝 그리움에
  꽃잎만 너울너울
이제 남은 이야기
  불끈 쥐었다 놓은 사랑
  그 작은 날개에 얹어
  사람 반 꽃 반 물속 같은 인연
  연연連連이 여러 해 살아가리라.


■ 동상 수상작 - 이종탁 / 광주광역시

상사화의 인내

거친 태풍과 폭우를 묵묵히 맞아가며
초가을 좋은 시기를 기억한 들꽃으로
지나온 잡초의 시절을 천천히 성찰하며
구차한 것을 버리고 피어난 상사화다.

야속한 연정의 세월은 덧없이 흘러갔어도
사랑은 영혼으로 피어난 고귀한 자태로
그대 곁에 떠날 수가 없는 슬픈 꽃이 되어
길어야 10일간 축제를 만끽하는 들꽃이다.

생사의 갈림길을 대 자비로 이어지고
천지의 영광이 마련한 불갑산 정기로
부처님께 지향한 기도는 낮은 자세지만
상사화를 보는 순간 깨달음을 준 들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