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키나발루봉 등정기 ②

영광지역 산악동호인 15명이 참가한 이번 키나바루봉은 '중국의 과부'라 유래되는 동남아 최고봉으로 세계에서 꽃피우는 식물군의 절반 이상이 모여있는 말 그대로 식물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본지는 이들 산악인들의 등정기를 산행에 참가한 이상금 대원의 글로 3회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 주
머리에 어지러움과 다리의 무기력증이 점점 더해지고 뭔지 몰래 기분 나쁜듯한 현상이 나타난다. 경사가 약간 심한 언덕바지에 일행들이 쉬고 있다. 같이 합류해 조금 쉬려는데 일행이 출발한다.
나와 신동준 대원은 더 쉬어가기로 한다. 광영 선배도 다시 주저앉는다. 광영 선배 안색을 보니 좀 이상하다. 창백한 얼굴에 입술이 하얗게 변해있다. 어지럽고 토할 것 같다 한다.
한 10여분동안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천천히 출발한다. 금방 호흡이 가빠온다. 고산증세를 잊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며 아주 천천히 짧은 보폭을 유지하지만 계속되는 돌계단에는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길가에 곱게 피어있는 2,730m의 고산야생화를 카메라에 담아본다.
이제 주위의 나무들은 고사목이나 키가 작은 고산목들이 주를 이룬다. 짙은 안개속에 허옇게 드러낸 고사목에 이끼 꽃이 흐늘거리는 것이 꼭 흉가의 거미줄처럼 스산하다.
한참을 오르니 자욱한 안개사이로 2,830m에 위치한 제6휴게소가 보인다. 앞서가던 일행들은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서양인 몇몇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뒤따라오던 광영 동준 대원이 보이지 않는다. 식수를 보충하고 한참을 기다리니 아래쪽에서 쉬고 올라온다 한다.
걷는 거리는 짧아지고 휴식은 길어지고 띵하니 머리가 아파온다. 발걸음이 내 의지대로 되지 않고 자꾸 비틀거려진다. 광영 대원을 바라보니 더욱 더 힘들어한다. 괜찮아야 할텐데 걱정이다. 약 100m마다 쉬어가기로 했다. 쿠알라룸프르에서 온 학생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오후 3시10분 해발 3,080m의 제7휴게소에 도착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멀게만 느껴진다. 걷는 거리는 자꾸만 짧아지고 쉬는 시간은 길어만 진다. 자욱한 안개 사이로 양철지붕을 한 건물이 보인다. “저기 집이 보인다”고 소리쳤더니 가이드가 조금만 더 가면 산장이라 한다. 아마도 기상관측소인가 보다. 다시 몇 분을 숨을 헐떡이며 걸었을까 산장이 보인다.
“다왔다”하고 소리친다. 상기된 모습으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산장(군팅라가단) 입구에 도착해 사진을 찍으려 하는데 광영 대원이 기어코 토하기 시작한다. 얼굴이 창백하다. 입술이 하얗게 변색돼 있다.
산장입구에서 사진을 찍고 산장안으로 들어서니 일행들이 박수로 맞이해 준다. 일행들은 이미 샤워를 마치고 소주 한잔씩 했다며 김한길 선배가 술을 권한다. 시원한 맥주였으면 얼마나 좋을꼬 하는 생각을 하며 두어잔 받아 마신다. 속이 후끈 달아오른다.
산장에서 약 200여m 떨어진 숙소에 여장을 풀고 샤워를 마치니 한기가 느껴진다. 겨울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내일 입을 몇 가지 옷가지를 빨아 숙소 난간에 말린다. 오후 햇살이 따갑다. 아스라이 산 아래로 뭉게구름이 피어오른다. 새삼 높이 올라와 있음을 실감한다. 기념사진을 몇컷 찍고 다시 산장으로 내려가 시원한 맥주에 저녁을 마쳤다.
몇발자국 못가 '5분간 휴식' 연이어
다시 숙소로 올라와 내일 새벽2시에 기상을 약속하고 잠들을 청해본다. 1실에 2층 침대가 2개 비치된 숙소는 쾌쾌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추울까봐 자켓을 입고 누웠는데 낡은 모포에 구질구질하다. 바지를 벗어 던지고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허사다. 순간 다리위로 뭔가가 기어 다닌다. 바퀴벌레인 것 같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비몽사몽간에 잠이 든 것 같다.
기상시간이 아직 남았는데 산행준비들로 부산하다. 모두들 잠들지 못하고 뜬눈으로 지새웠나 보다. 끓인 물에 컵라면 한개씩을 해치우고 현지가이드와 산행가이드를 기다린다.
현지시간 새벽 2시30분, 2.7㎞거리에 있는 정상을 향해 출발이다. 머리에 헤드렌턴을 켜고 헉헉거리며 나무계단을 계속 오른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답답하다.
한번에 100m 전진이 어려울 정도로 급경사에 호흡곤란이 온다. 로프를 잡고 위험한 경사면을 지나 또 나무와 돌계단, 과연 일출전에 정상에 도착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한참을 오르다보니 관목지대가 끝나고 평평한 길이 나타난다. 저 앞에 불빛이 보인다. 마지막 정상 입산 확인작업을 하는 사무소다. 어둠속에서 불을 밝히고 혼자 앉아 등반자 한명 한명 이름을 대조 확인한다. 식수를 보충하고 다시 출발이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언덕받이 화강암지대가 앞을 가로막는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화강암 암반지대 지루하기 그지없다. 저 멀리 길을 안내하는 산악가이드의 불빛만 아련하다.
여행사 사장과 현지가이드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정상까지는 가지 않으려나 보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숨이 찬다. 약 100여m 전진에 약 5분씩 휴식이다. 고지대의 세찬 찬바람이 더딘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군데군데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돌무더기와 바위가 있어 서로 몸을 맞대고 웅크리고 앉아 휴식을 취한다.
걷는데 평형감각이 자꾸 흐트러지고 호흡곤란과 두통이 온다. 문득 광영 선배가 걱정이 돼 불러본다. 뒤따르고 있다. 다행이다. 대홍 대원도 불러본다. 다들 아직은 괜찮은 것 같다. 앞으로 한걸음 한걸음 발을 옮겨놓는다. 몇 발자국 못가 헉헉거리며 '5분간 휴식' 소리가 연발한다.
키나바루봉 등정 산악인 참가자
이기남 김성운 조관일 송장식 오철식 이상금 신동준 강대홍 이정재 김환길 김재학 김삼성 유광영 박주경 윤성명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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