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문화예술인 95 - 시조 박정순

“노인대학에서 시조를 지도하려고 악보를 복사해 오는 중이야”라며 어깨에 짊어진 배낭속의 악보를 꺼내 보이는 모습이 무척 건강해 보인다. 그가 바로 시조사랑에 빠진 박정순(74)씨.
법성이 고향인 박 씨는 일제시대 때 법성중을 졸업했고 3남3녀의 둘째며느리로 시집와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뒷바라지를 하며 2남3의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가정주부로만 생활해 왔다.
이렇게 자신에게 감춰진 재능과 끼를 철저하게 꼭꼭 감추고 생활하던 그는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남편과도 사별한 60대 후반부터 바깥세상을 나오기 시작했다.
남편과 사별 후 광주에 있는 자식들과 함께 생활하며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가까운 복지회관을 드나들며 시조를 배우기 시작했고 어린 시절부터 민요나 트로트 가요를 잘 따라 불렀던 그는 원래 타고난 소질이 있었고 시조를 잘 따라 부르게 됐다.
이렇게 늦어도 한참 늦은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시작한 시조는 그의 황혼 전체를 바치게 했고 그곳에 완전히 푹 빠져들게 했다. 이렇게 실력이 차츰 늘어간 그는 전국에서 열리는 시조경창대회를 참가하게 했고 대회에서 정한 을부 갑부 특부 부문에서 1등을 차지하며 우수한 성적을 거둬 실력을 인정받게 됐다.
박 씨는 “자식들이나 가족들은 힘들게 전국을 쫓아다니며 고생한다고 모두들 반대하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남은 명인부와 국창부에 도전해 사범자격을 취득하고 싶다”며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옛것이 가장 귀중한 것이고 특히 우리지역에 많은 이들이 시조를 따라하고 좋아하게 돼 우리문화를 더욱 소중히 여기길 바란다”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박 씨는 시조말고도 전남노인지도자대학을 23기로 수료했으며 영광농협노인대학을 1기로 졸업했다. 이 밖에도 그는 예절교육지도자 자격을 취득했고 지금은 작은딸의 살림을 맡아 해주며 약간의 농사도 함께 지으며 생활하고 있다.
나이가 일흔을 넘겼어도 이제 환갑을 조금 넘긴 나이로 밖에 안 보이는 그는 아마도 삶을 바쁘고 부지런히 살아오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시조는 사대부계층이 만들어내고 주도해나간 계층적 귀속성이 강한 문학이었으나 조선후기에 들어 급격하게 확산되고 대중화되면서 시조를 쓰는 계층이 다양해졌다.
오늘날까지도 그 명맥은 끊기지 않고 지속되고 있으며 시조는 한민족의 사랑을 가장 오래 받아온 예술이라 평가받고 있다. 박 씨 또한 늦은 나이에 배운 실력이지만 지역주민들에게 전통의 혼이 깃든 시조를 가르치며 그 맥을 이으려 하고 있다. 전통문화가 ‘보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즐기는 대상’으로 바뀌어져 가는 데 시조가 앞장서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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