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인터뷰 - 퇴임앞둔 조남식 영광문화원장

● 다년간 문화원장을 맡으시다 퇴임하게 됐습니다. 소회를 밝히신다면 어떻습니까
35여년간 영광문화원장을 봉사정신으로 역임해왔지만 세월은 나의 뜻과 같이 이뤄지지 않아 허명무실할 따름입니다. 다시 말해서 유명무실과도 같습니다.
제가 문화원 설립 당시의 크게 품은 목적은 백범 선생이 백범일지에서 강조한 '문화의 힘' 큰 뜻의 정신문화 창출사업이 목표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실리적 가치창조가 아닌 정신적 가치 창조였습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저의 가훈이며 좌우명인 지성투석(至誠透石), '지성이면 돌도 뚫는다는 것이 어찌 돌을 뚫을 수 있겠는가, 그만치 돌을 뚫는 정신으로 자기와의 싸움인 것이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뿐이다'라는 백범선생의 신조를 실천키 위한 창립이었습니다.
또한 세계화의 안목을 갖는데 있었기에 문화원 창립과 개원한 때를 같이 해 이 고장에 첫 번째로 국제봉사단체인 국제라이온스협회 309-C지구 영광라이온스클럽을 탄생시킨 창립자로서 첫 라이온 씨앗 알이 이 땅에 뿌리내려져 6개 라이온스클럽으로 발전시킨 원동력이 크게 기여한 공적을 남긴 일이었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미래 세계화시킬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뿌리깊이 심어보자는 것이 야망이었습니다.
● 초기 문화원장을 맡던 당시와 요즘을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실 것 같은데 초기 문화원장을 맡던 당시 지역의 문화적 토양은 어떠했습니까
우리 영광지역은 우리 것이 아닌 원치않는 서양 것의 이데올로기 이념 갈등으로 극과 극의 투쟁 때문에 그 당시의 지역의 문화적 토양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숙명적인 수난기의 세계경제공항때 출생했고 또한 6ㆍ25전쟁후 우익학생단체인 '학련' 생의 문화부장이었기에 의식적 반동분자로 분류돼 잊어지지 않은 생사의 수난을 겪었고 그때마다 죽임을 면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를 우리 민족이 비극의 역사가 도래될 것을 미리 예지하시고 백범선생이 북에서 남북협상을 제안했지만 실패하고 되돌아 오셔서 우리는 독립보다 먼저 문화의 힘을 창출하자고 강조한 신념을 따를 것을 마음속으로 굳게 가지고 실천하기 위해 문화원 설립을 하게 된 동기였습니다.
서양의 유물론 이념에 깊숙이 빠져있는 우리민족의 수난의 역사적 교훈을 지속적으로 되새겨야 할 정황에서 문화적 토양의 정체성을 창출할 수 있겠는가는 각자가 자문할 문제입니다.
● 소위 '21세기는 지역문화의 세기'라고 합니다. 이 말을 일반인에게 풀이해 설명하면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까
이 말은 문화의 21세기는 지역문화의 시대를 창조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의식을 모르고는 정체성이 없는 것과 같고 세계화도, 세계적이란 것도 논할 수 없다고 민족시인 노산 이은상 선생이 말씀과 글로 표현한 것과 같이 지역문화와 역사의식을 갖추고 있을 때 정체성이 정립되고 세계화도, 세계적이란 것도 논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가 선진문화의 강국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교육은 백년대계이지만 문화는 천년대계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육은 백년내에 결실이 창출되지만 문화는 천년후에야 결실이 창출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이 문화의 21세기는 지역문화의 시대임을 인식해야 하고 강한 문화국가로 창조되는 첩견을 지역문화의 진흥과 창달에 있기에 지역문화의 천년대계를 위해서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가는 지속적인 정신문화의 창출·계승활동에 임해야 장구한 세월속에서 비로써 정신적ㆍ물질적 문화유산이 창조되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창조된 지역문화유산은 세월따라 유구한 역사, 문화유산으로 이뤄져 세계의 그 어떤 것에 비교가 되지 않은 소중하고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세계적인 자산이며, 인간다움 삶의 문화생활과 경제의 원천이란 것을 우리는 더욱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20세기가 과학기술발달을 토대로 이룩한 경제 발전의 인간의 물질적인 행복증진에 기여했다면 21세기는 문화가 국가 경제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영역으로 떠오르는 문화의 21세기, 바로 문화의 시대는 곧바로 지역문화시대의 미래 창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 다년간 문화원장을 맡으시다 퇴임하는 소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개인 조남식'또는 '문화원장 조남식'의 관점에서 공과를 자평하면 어떻습니까? 또한 아쉬움이 있다면 어떤 점입니까
퇴임의 소회가 남다를 것도 없습니다. 앞서 자세하게 문화원의 설립 개원 당시부터 백범선생의 신념인 '문화의 힘'의 참뜻을 그대로 지성투석의 실천신조로 해왔기 때문에 퇴임후에도 전임자로서 후임원장께 최선을 다해 적극 협조할 것입니다.
현재 전국문화원연합회 부회장 겸 전남도지회장의 임기중에 있기에 직ㆍ간접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개인 조남식 또는 문화원장 조남식의 관점에서 공과의 자평은 군민과 지역사회 인사들께서 하셔야 옳을 것 같습니다. 35여성상 처음 있었던 미래 후세대 청소년의 체험학습교육장으로 활용할 <묘량면 효동마을의 문화ㆍ역사마을 만들기ㆍ가꾸기>사업을 전국1위로 엄선평가받아 30억원의 민간지원비를 따냈다는 것이 공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과는 제가 이야기 할 수 없어서…
현정부나 광역자치단체나 시ㆍ군자치단체에서는 '문화창달'이라고 외치지만 재정자립도가 취약할수록 그에 따른 예산지원이 반비례되니까 아쉬움이 항시 뒷따릅니다. 실리적 가치 창출이 아닌 정신적 가치를 창출하는 문화원이기 때문에 관심조차도 갖지 않은 것은 이해가 가지만 문화원을 찾아오지도 않고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이도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 지역향토사가 입장에서 볼때 문화원장의 인생역정에서 기억에 남는 역사적 지역향토사를 꼽자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고서 <무령삼강록> 상ㆍ중ㆍ하권을 한권으로 묶어 국역 따로 원문 따로의 편집이 아닌 현대식 가로쓰기식으로 원문일부 국역일부 식으로 국역 편집, 교정, 간행하는데 3년간이 소요되는 기간이 걸리는 어려운 작업이어서 여러 출판인쇄소에서 이를 맡으려고 하지 않은 것을 끈질긴 설득으로 교정을 제가 직접 책임하에 성문당인쇄소에서 맡아 3년만에 발간에 이르기까지 심혈을 경주했었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또 1947년부터 현재 실시하고 있는 마을사 자료 조사수집 보존사업은 예산부족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못하고 예산범위내에서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뒷따르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현재 완료된 읍면마을은 불갑, 묘량, 대마, 군서, 군남, 염산 일부입니다. 완료된 것도 계속 보완자료가 발굴, 조사, 수집, 정리되고 있습니다.
현재 영광21신문사에서 연재로 마을사를 내고 있는데 신문에 게재돼 영광문화원이 마을사료 조사 수집 정리 보존되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이 알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뒤늦은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 문화원장께서는 지역향토사학 범주에서 보면 고 이기태 향토문화연구회장 등과 지역향토사학계의 1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세대와 보면 다소 세대차라든지 인적 구성면에서 후진들이 빈약한 실정인데 후진양성을 위한 방법이나 지역향토사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습니까
지역향토사학을 하려고 하는 의욕적인 후배들이 없어서 걱정이 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목포대학교가 광주ㆍ전남지역에서는 향토사 학자를 제일 많이 배출했었습니다. 현재 충남 공주대학교에 계시는 이해준 교수가 서울대 규장각에 근무하시다 목포대에 첫 부임하자마자 영광문화원에 오셔서 첫 대면때 영광부터 향토사를 발굴조사 수집정리하겠다고 하기에 '그렇게 합시다'고 환영해 드렸습니다.
그 제자들중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제일 많이 배출됐기에 그 뒤를 이어 광주ㆍ전남지역의 향토사가 빛을 발하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광주ㆍ전남지역 문화원장을 지낸 사람이면 이해준 교수하면 향토사가의 대부라고까지 칭호를 주어도 손색이 없는 분입니다. 그 인연으로 <묘량면 효동마을의 문화ㆍ역사만들기ㆍ가꾸기 사업>을 문화원이 선정했을때 이해준 교수가 지정 지도하셨고 더구나 심사위원을 맡고 있어서 우리문화원에서는 많은 혜택을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화원 시청각 문화강좌실에서 지난 2004년 5월4일 효동마을사업 추진 워크샵을 개최했는데 사업 이해와 증진강연을 2시간30분간이 소요되는 강연을 초빙된 이해준 교수가 했었습니다.
이날 초청된 인사가 이낙연 국회의원, 군수, 의장, 교육장, 도의원을 비롯 초ㆍ중ㆍ고 교장, 마을 주민 등 이 강연을 끝까지 메모해가면서 진지하게 듣고 이낙연 국회의원도 이 사업 이해증진강연을 들으니 꼭 이 사업이 미래 후계 세대인 청소년들의 체험 학습교육장의 당위성을 인식하고 사업추진에 적극 협조하겠다 했습니다.
이해준 교수도 어디를 가나 식이 끝나면 가는 것이 예사인데 이곳 출신 이낙연 국회의원을 비롯 관내기관 단체장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강연을 끝까지 들어준 일은 처음 있는 일로 기쁜 마음 끝이 없다면서 정말 오늘의 워크샵은 이 사업이 성공되겠다고 확신한다고 했었습니다. 결국 이 교수 말대로 전국1위의 사업장이 된 것입니다.
저로서는 35여성상의 원장 임기 동안 최고의 위업을 이룬 것입니다. 정말 기쁘기 한이 없습니다.
저는 후진양성을 위한 방법이나 지역향토사 활성화를 위해 하고자 하는 분은 스스로 본원에 찾아와서 진로를 문의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한사람입니다.
의욕만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 본원 부설 향토사연구소의 조직기구가 있으니 희망자만 있으면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젊은 세대들이 실리에만 급급하기 때문에 어려운 일은 기피하고 있는데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 문화원장직에서 퇴임하시더라도 지역향토사학자로서 자의든 타의든 일정한 역할이 필요한 상황으로 보입니다. 향후 활동계획 또는 거취는 어떻게 하실 것인지 궁금한데요.
문화원장직은 퇴임하지만 지역향토사학가로서도 뿐만 아니라 현재 문화원 부설 향토사연구소 소장으로서, 국립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으로 위촉돼 있기 때문에 그리고 신문에 <영광지역 근ㆍ현대사>를 집필하고 있기에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기록으로 영광 역사를 재조명하여 책으로 간행까지 할 것입니다. 먼 훗날 역사적 교훈이 될 것입니다.
또 앞서 언급했습니다만 전국문화원연합회 부회장 겸 전라남도지회장을 역임하고 있기 때문에 나의 건강을 위해서도 정신문화 가치창출에 매진할 것입니다. 앞으로 지방신문에 컬럼이나 특별기고문도 집필할 것입니다. 이 또한 건강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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