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보리수매 무엇이 문제인가?
2005년산 보리수매가 한창이다. 올해는 그 어느해보다 자연의 저항없이 풍성한 수확을 거뒀다.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오는 어부처럼 가득 쌓인 곡간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이 같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에 마음한구석 허전함을 지울 수 없다. 그건 정부수매 약정량 외에는 처분할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보리는 쌀이나 기타 농산물과 달리 소비처가 다양하지 않고 보리를 통한 가공식품도 많지 않기 때문에 생산에만 의존하고 있는 농민들로서는 애를 태울 수밖에 없다. 우리 영광 관내에만 해도 정부수매 약정량과 농협자체 계약량을 제외하면 8만여가마의 잉여곡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나 생산자단체인 농협은 농업인들에게 계약면적을 준수해 줄 것을 당부하고 계도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잘 지켜지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부의 재배면적당 수확량이 10a당 419kg이나 우리지역은 평균 550kg로 우리지역보다 적게 산정돼 잉여량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다른 작목에 비해 노동력이나 관리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보리재배 확대를 통한 무작정 추가수매에 기대하며 소득창출에 더 심혈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농촌에서 안정적인 소득을 창출하는 품목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쌀과 보리는 우리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는 가장 기초적인 생산물로서 그나마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해 왔다. 그러나 이제 추곡수매제도가 없어지고 가격차를 보전해준다지만 예년같이 안정적인 쌀값지지 역할을 해줄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농업인들이 피땀흘려 정성껏 수확한 이 잉여보리의 처분을 가만히 지켜만 봐서는 안된다. 그것은 농업이 국가의 기반산업이며 생명산업이기 때문이며 또한 그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는 우리 농업인들을 보호하고 육성해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상황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지금 보리작황이 예년에 없는 풍작에 보리가격은 정부수매가격의 60%선인 22,000원~23,000원선에서 거래가 형성되고 있으며 또 한편에는 정부의 추가수매에 대한 기대가 공존하는 현실에 서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현실이다. 냉혹하기까지 하다. 판단여하에 따라서 기십만원 많게는 몇백만원까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농민과 함께 호흡하며 애환을 함께하는 농협에 근무하는 나로서는 가장 가슴 아프다.
다행히 정부의 추가수매가 있어 남은 물량을 전부 소화해주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는 있다. 정부의 시책을 위반하면서까지 무한정 재배를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특정인에게 추가로 수매를 해준다면 형평성문제가 대두될 것이며 이렇게 된다면 그 누가 정부의 시책을 믿고 따라 가겠는가? 더 이상 적정량 재배로 책임과 최선을 다하는 선량한 농업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만약 정부의 추가조치가 없다면 이 문제 또한 심각하다. 다행히 시장유통이 활발하다면 가격은 고하간에 별문제가 안되겠으나 결국은 생산자단체인 농협이 나서서 해결해 줘야 하는데 그것 또한 쉽지 않다. 보리는 다른 농산물과 달리 판로가 극히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이제 농민도 농협도 다른 농산물과 같이 보리를 경쟁품목으로 대해야 할 듯 싶다.
다시 말하면 생산과 판매를 같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민은 원가대비 비용을 고려해 적정가격이면 적극적인 시장출하를 생각해야 하고 농협은 다양한 판로확보를 통한 보리가격 지지와 판매 중개, 더 나아가 대량거래처와의 자체계약을 통한 안정적인 판로확보와 함께 농업인의 소득창출을 꾀해야 한다.
WTO, FTA 등 농산물의 개방은 가속화되고 추곡수매폐지 등 생산과 소득기반이 무너지는 농업·농촌은 점점 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농민과 농업관련단체들이 상호협력해 다양한 소득작목을 개발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농업·농촌이 희망이 있고 농민이 천하의 근본이라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길 기원해 본다.
김남철 전무<염산농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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