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건축 박물관 군남면 매간당 고택②
살아있는 건축 박물관 군남면 매간당 고택②
  • 영광21
  • 승인 2019.05.3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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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경사진 지형을 남북 축으로 나누어 동쪽으로 사랑공간을, 서쪽으로는 안 공간을 배치하고 있다.
바깥대문채인 삼효문을 지나 들어서만나는 사랑공간은 은행나무가 심어진 작은 화단을 중심으로 사랑채, 별당, 중문간채, 삼효문, 마부간, 연못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 전면에는 3개의 편액 왼쪽부터 익수재, 매간당, 구간재 순서로 걸려있다. 익수, 매간, 구간은 모두 이 집에 살았던 선조의 호이다. 바깥주인의 호로 사랑채 이름을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의미를 간단하게 풀어보면 익수재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뜻이고 매간당은 산골짜기에서 피어나는 매화라는 뜻으로 남이 알아주건 말건 소박하게 지조를 지키며 산다는 의미이다. 구간재란 거북이는 산골짝에 흐르는 작은 도랑물도 조심한다는 뜻으로 매사에 작은 일에 조심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의 선조들이 자신의 호로 집의 이름을 부르게 한 것은 자신과 집을 동일시했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고택은 원래 ‘연안김씨 종택’이라 불렀지만 1868년 매간 김사형이 건립한 집으로 그 당시 사랑채 이름이 매간당이었기 때문에 영광 매간당 고택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사랑채는 자연석으로 4단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정면 7칸 측면 3칸의 ‘一’자형 대청을 두고 있다. 사랑채 남쪽 끝에는 작은 마루를 만들어 연못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랑채의 원기둥과 복도를 통해 부엌과 연결되어 있는 목욕간과 화장실은 민가 건물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이다.
무쇠로 만들어진 목욕통은 가족을 배려한 합리적인 공간구성이다.
별당은 사랑채와 같이 연못을 향하여 툇마루를 두고 있어 연못과 행랑채 그리고 담 너머 산을 시원하게 볼 수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一’자형 건물로 대청을 가운데에 두고 좌우에 온돌방을 설치한 동재와 서재가 있다. 향교에서나 볼 수 있는 구조로 이곳은 집안의 자제나 마을 학동들의 공부를 위한 서당으로 사용했다.
특히 전면은 추녀 밑으로 내려오지 않고 방에서 오른쪽 끝 연못이 있는 툇마루까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툇간을 둘렀다.


안공간은 넓은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커다란 아래채, 부속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로 들어가는 길은 사랑채에서 사랑채 마당을 통과해 중문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사랑채 뒤로 나있는 작은 문을 통하면 쉽게 안채로 드나들 수 있다.
안채는 ‘一’자형 건물로 사랑채보다 기단을 한층 높여 5단으로 쌓아 툇마루에 앉으면 맞은편에 있는 아래채 지붕 너머로 들판과 건너편 산을 훤하게 볼 수 있다.
안채 정침의 좌우에 있는 곳간채 가운데 하나는 5량 집 맞배지붕으로 만들고 온돌방을 끝에 둔 좌측의 다른 하나는 우진각으로 만들어 획일화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변화의 재미를 두었다.
안채 옆으로 튀어나온 ‘ㅁ’모양의 우진각은 안채 앞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신랑신부가 첫날밤을 자는 초례신방이었다.
안채 뒤뜰에는 감나무와 접시꽃, 창포 등을 정성껏 가꾼 정원이 있고 지금도 물이 샘솟는 우물이 있다. 안채 맞은편에 있는 아래채는 규모가 큰 곳간채로 정면 9칸 측면 2칸 반의 ‘一’자형 건물이다. 아래채의 뒷벽은 담장의 역할도 하고 있다.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때 공출에 대비해 쌀 창고를 이중으로 만든 비밀창고가 숨어있다.
안채 후원은 약 100여평의 잔디로 사당과 이어져 있다. 장독대가 있는 후원의 위쪽 끝자락 담장에는 호지집 을 벽 담장으로 두어 필요한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게 했다.
머슴들이 살았던 초가의 호지집은 세 채 가운데 현재 두채만 남아 있다. 안채 북쪽에 협문을 만들어 집 안에서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때 밖으로 피신할 수 있도록 했다.
안공간은 저장되는 물건에 따라 문을 모두 다르게 만들고 여러 상황에 대비하는 등 용도에 맞춰 공간을 변화 있게 만든 지혜가 돋보인다.
사당은 사랑채와 안채 사이 뒤편 서쪽의 약간 경사진 곳에 있다. 사당은 특이하게도 사당 후원의 면적을 매우 넓게 잡아 잔디를 심었다.
또한 사당을 안채의 장독대와 안채의 뒷부분에 위치하면서 별도의 담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당시 상류 주택에서 보이는 사당의 기본 틀에 크게 벗어나고 있다.
그 이유는 집의 시선 방향에 따라 북향으로 지은 건물인지라 채광이나 통풍이 부족하여 이를 보완하기 위해 후원을 늘렸기 때문이다.
주소 / 군남면 동간길2길 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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