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백년지대계 영광향교
조선시대 백년지대계 영광향교
  • 영광21
  • 승인 2019.06.1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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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닐 때 꼭 들러보는 곳 중 하나가 향교와 서원이다.
전주향교는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드는 가을이 오면 걷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공간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담양 죽녹원 대나무숲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위치한 담양향교는 작은 규모이지만 홍살문도 남아있다. 산 아래 자리 잡은 능주향교는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영광향교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1,000년전 백제의 땅이었던 영광은 중국과 교류를 했던 국제항 법성포가 있었으니 고려시대부터 영광향교가 만들어져 학교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정유재란때 포로로 잡혀간 강 항은 일본 성리학의 아버지가 된다. 강 항도 어린 시절 영광향교 동재에서 기숙하며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향교로 향했다.
영광향교는 세번을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턱대고 찾아갔다가 문이 닫혀있어 담장 밖에서 까치발로 기웃거리다가 돌아 왔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향교에서 문을 열었으니 오라는 전화가 왔다. 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서둘러 향교로 달려갔다. 두번째 발걸음이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웅장하면서도 위엄이 느껴지는 고목이 있어 깜짝 놀랐다. 명륜당 앞에는 480년 정도 되는 비자나무와 500년 정도 되는 은행나무가 먼 길을 찾아온 손님을 무심하게 덤덤히 맞아 주었다. 대성전에도 수령이 600년 정도 되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었다.

향교에는 대부분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다. 행목이 유학자를 상징하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행이라 하면 은행나무와 살구나무를 지칭하는 한자이다. 행단은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중국 산동성 곡부현의 성묘 내 유적에서 연유하여 ‘선비가 머물며 공부하는 곳’이라는 별칭이 됐다.
그래서 선비가 공부하는 곳이었던 향교는 대부분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다. 그 중에서도 영광향교의 은행나무는 다른 향교에서는 보기 어려운 멋진 고목이다.
자연을 압도하듯 하늘로 뻗어 올라간 은행나무의 거대함은 위엄이 느껴진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향교에서 조용히 수백년 질곡의 역사를 지켜 본 이 은행나무만을 보기 위해 영광을 와도 후회가 없을 만큼 감동이 있는 풍경이다.
처음 갔을 때는 아직 노란색물이 덜 들어 1주일후에 세번째로 다시 들렀다. 아직은 그때가 아니었다. 이곳 은행나무는 어느 날 순식간에 물이 들어 빛나다가 3~4일만에 그 잎이 다 떨어진다고 한다.
고즈넉한 향교 안으로 들어갈수록 고색창연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고 이곳에서 공부했을 젊은 선비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우리 선조들이 추구했던 선비란 단순히 학식이 많거나 높은 관직에 오른 권력가가 아니고 성품이 올곧은 사람, 사람다운 사람, 남을 배려하는 사람, 자기 이익만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었다.

영광향교는 <향전>에 따르면 고려 공민왕때 지어졌다고 전해온다.
고려에서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향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강화됐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향교의 흥폐로 해당 지역 수령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았을 정도로 지방 교육에 비중을 두었다.
태조 7년에 이르러서는 중앙에 성균관을 세우고 지방에는 향교 설치를 적극 장려한다.
고려시대에는 영광향교가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지금의 위치는 조선시대에 새롭게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왜구의 침입으로 세조 2년 성산 아래로 읍터를 옮긴 후 세조 11년 봄에 관사를 준공하였다는 기록이 신숙주의 객관기에 남아있어 향교도 이 무렵 관청 인근이었던 지금의 자리에 같이 지어졌을 것으로 본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인해 불에 타 없어진 것을 다시 복원했다. 도호부에 해당됐던 영광향교의 규모는 유생 70명과 예리 2명이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 동무, 서무, 명륜당, 동재, 서재 등이 있는데 서울에 있는 성균관이 정종 2년에 화재로 손실된 후 태종 7년에 복원을 진행하면서 영광향교의 배치를 참고했다고 한다.
향교 안의 건축물들은 직사각형의 평탄한 대지 위에 앞쪽으로 대성전을, 뒤쪽에 명륜당을 두고 있는 전묘후학 형식이다.
두 공간 사이를 담장으로 나누고 담장 왼쪽 끝에 있는 문으로 다니도록 했다. 이런 건물배치 형식은 전국에 그리 많지 않은 구조이다.
영광향교는 1985년 2월2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됐다.
주소 / 영광읍 항교길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