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친 자연 환경 속에서도 오랜 시간 사람을 포근하게 지켜준 고택이 있다고 해서 영광군 묘량면으로 향했다.
이규헌 가옥이 있는 당산마을에 도착해보니 입구에 있는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경로당에서 시작해 이규헌 가옥, 대마무밭, 꽃길, 대마방향 농로를 돌아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1.5㎞의 산책길을 소개하고 있었다.
약 35분 걸리는데 성인남자는 송편 2개, 성인여자는 사과 반개의 칼로리를 소비한다는 <당산마을 걷기 운동> 코스 내용이 흥미로웠다.
마을 초입 대로에 위치한 이규헌 가옥은 전주이씨 양도공파의 종가다.
이효상이 이곳에 정착한 이후 500여 년간 20대손이 현재까지 살고 있다. 가옥은 남쪽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대지 위에 남향으로 건물을 배치했으며 3칸의 솟을대문인 정문과 안채, 사랑채, 사당, 호제집(노비들의 집)이 있어 조선시대 민가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집 안으로 들어서는 첫 관문인 솟을대문은 숙종 때 이상호의 지극한 효성을 기려 세운 정려문이다. 3칸 솟을대문에 걸려있는 현판이 집안의 기품을 말해준다.
솟을대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서자 동쪽에 자리한 사랑채가 당당하게 손님을 맞이한다.
정남향으로 배치돼 있는 솟을대문을 지나 중문을 통해 들어서면 동쪽에서 약간 어긋나게 배치된 안채 건물이 나온다. 안채가 중문에서는 보이지 않게 자리 잡은 데는 이유가 있다. 조선시대 상류주택은 안과 밖의 공간이 구분돼 있기 때문이다.
내외사상이 반영돼 안공간인 안채는 여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공간이어서 밖에서 안공간이 바로 보이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안채 동쪽으로는 초가로 된 부속채로 호제집이 있고 뒤편에는 대나무 숲으로 이뤄진 경사지형에 축대를 쌓아 장독대를 두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상선당이라는 현판을 걸고 있는 사랑채는 한옥의 구조에서 밖의 공간이다. 여기서는 집안의 남자들이 글공부를 하거나 풍류를 즐겼다. 이규헌 가옥의 사랑채의 건립연대는 상량문에 ‘을미년’이라는 기록이 있어 고종 32년임을 알 수 있다.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에 전후좌우에 퇴가 있는 형태이다. 평면은 윗대청 1칸, 아랫대청 1칸, 방 2칸의 순서로 배치돼 있다. 2칸의 방을 터서 하나로 사용했으며 대청과 방의 출입문에는 각각 띠살문을 설치했다.
외벌대의 낮은 다듬돌을 쌓은 기단 위에 원형 주춧돌을 두었다. 그 위에 둥근기둥을 세운 다음 멋스러운 주련을 써 붙였다. 안채는 2고주 5량의 구조를 갖고 있다.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의 집으로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 머릿방 1칸과 골방이 있는 큰 대청 2칸, 큰방 1칸, 부엌과 정지대청 1칸, 건넌방 1칸으로 구성됐다.
창호는 전체적으로 2짝 띠살 여닫이창을 사용했다. 전면 중앙부와 좌퇴에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두벌대의 장대석 기단 위에 잘 다듬은 네모반듯한 모양의 주춧돌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다.
서까래만으로 처마를 형성한 홑처마 형식이며 지붕 위까지 박공이 달려 용마루 부분이 삼각형 벽을 이루고 있는 한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팔작지붕이다.
사당은 조상의 혼백을 모시는 곳으로 이곳에는 태조의 조카이며 조선의 개국공신이었던 양도공 이천우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데 조선 태종이 하사했다. 태종 16년에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날 때 태종이 많은 전답과 노비를 하사하려고 했지만 이를 사양하므로 영정을 내렸다고 전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영정이 손상돼 영조 50년 조정에서 박사해와 한종유를 파견해 옮겨 그렸다. 공신 초상에 속하는 영정으로 가로 103㎝, 세로 160㎝이며 사모와 금대로 정장하고 두 손을 소매에 넣고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이 유물은 1987년 전남도 문화재자료 제146호로 지정돼 보존하고 있다. 사당 건축은 정면 3칸, 측면 1칸, 맞배지붕이다. 외벌대의 장대석 기단에 막돌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으며 전퇴에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측면에는 풍판을 설치했다.
사찰의 건물처럼 단청이 돼있어 멋스러움을 지녔다.
앞 정원에는 연못을 만들어 부레옥잠을 심었는데 지금은 연못을 메워 밭으로 사용하고 있어 아쉽다. 이 외에 안채의 우측에 정면으로 초가로 된 호제집이 있어 양반과 노비들의 주거형태가 비교되는 자료가 되고 있다.
이규헌 가옥은 배치와 구성이 조선시대 민가형식의 전형을 잘 갖추고 있어 1987년 6월1일 전남도 민속자료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됐다.
주소 / 영광군 묘량면 묘량로4길 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