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 어미가 엎드린 형국 일제때 통합
소의 어미가 엎드린 형국 일제때 통합
  • 영광21
  • 승인 2005.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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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 45- 군서 상소마을
군서면 덕산리 상소(上所)마을은 1580년경에 진주정씨, 김해김씨, 담양전씨 등 3성(姓)이 마을에 들어와 정착했다가 진주정씨 정의명이 터를 잡아 지금의 마을이 형성됐다.

조선중기 마을 뒤에 위치한 덕산의 모양새에 따라 소의 어미가 엎드려 있는 형국의 상소마을과 소의 새끼의 모습의 하소마을로 나뉘었으며 두 곳을 합해 소매(牛山)라 부르다가 일제때 덕산리로 통합됐다. 지금의 명칭은 1981년에 변경됐다.

군서면 소재지에서 만금리를 지나 매산리 백공·내방마을 앞 표시비에서 약 1km를 이르는 지점에 이르면 덕산슈퍼가 있으며 이 마을이 상소마을 초입이다. 뒤로는 원덕산 마을, 하천은 불갑천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며 백수읍 하사리천과 연결됐다. 진입로 주변의 널따란 논·밭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임을 보여준다. 벼농사, 고추, 딸기, 보리 등의 작물로 생계를 유지한다.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한국침탈은 비교적 작은 상소마을조차 고통스럽게 했다. 조선총독부는 지배와 수탈을 목적으로 1910년 조선총독부관제를 공포하고 1913년 행정구역을 통폐합 시켰다. 상소마을도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덕산리로 통합돼 잦은 징발과 약탈, 그리고 자연적인 가뭄 등으로 덜익은 청보리로 연명하는 등 허기진 배를 물로 채우는 등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해방후 한국전쟁으로 또 한번의 약탈을 당했으나 1970년 새마을운동과 함께 마을특유의 단결력으로 수석동길, 상소입구, 원덕산에서 상소까지 도로 등을 확장하고 이로 인해 농기계의 유입과 원활한 활동으로 수확량이 늘어나면서 지금의 마을을 이뤘다.

상소마을엔 둔암 정종초 선생이 은둔해 학문을 닦던 <탁염정>이란 정자가 있다. 청결한 마음가짐을 담고 있는 탁염정은 매산리에 있었으나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후손들이 지금의 덕산리로 옮겨지었다.
자료제공 : 영광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