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불갑산상사화축제 기념 인터넷공모전 수상작
2019 불갑산상사화축제 기념 인터넷공모전 수상작
  • 영광21
  • 승인 2019.11.0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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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상 수상작 - 최태희 / 경기도 안양시

상사화, 천년의 그리움

영광 불갑산에서 ‘상사화, 천년의 사랑을 품다’라는 주제로 꽃 축제가 열렸다.
사진으로만 보던 풍경에 빠져 작심하고 불갑산으로 떠났다. 상사화축제가 한창 무르익어 불갑산상사화 군락지는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온통 붉은 빛으로 번져난다. 산기슭과 꽃길은 멀리서부터 붉은 기운이 분수처럼 피어나고, 끝없이 펼쳐진 꽃물결은 먼 곳까지 달려온 나를 위해 레드 카펫을 펼쳐 놓은 듯 황홀하다.
상사화는 생명력이 강해 추운 겨울부터 연녹색의 잎이 올라와 장마가 끝난 뒤 잎이 지고 8~9월경 마늘종처럼 긴 꽃대를 올려 꽃을 피운다.
잎이 모두 말라 죽은 것처럼 보일 때 꽃이 피니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어 평행선처럼 영원히 만날 수 없다.
그래서일까, 꽃말도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니 그리움에 목울음으로 피어나는 꽃이다.
지난해 내소사 여행 중 노란 물결을 이룬 상사화를 보니 꽃무릇과는 다른 품종이었다. 꽃과 잎이 만날 수 없다는 생물학적 특성만 같을 뿐 내가 알던 상사화와 꽃무릇은 완전 다른 꽃이었다. 불갑사에 흐드러지게 핀 꽃은 붉은 상사화로 불리는 꽃무릇이다.
석산이라 불리는 꽃무릇은 일본이 원산지로 절 근처에 많이 자생하며 배수가 잘 되는 반그늘 습지에서 자란다. 꽃이 지고나면 줄기가 쓰러지며 사라진다. 10월경 잎이 나와 겨울을 나는데 ‘동설란’이라고도 부른다. 꽃이 진 뒤 늦가을 채취하여 그늘에 말린 줄기는 거담, 이뇨, 해독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상사화는 우리나라가 원산지로 제주도나 위도에도 자생하며 색깔별로 여러 종류가 있다. 비늘줄기는 방부제로 탱화 그릴 때 염료에 섞거나 불경을 제본할 때 접착제로 사용한다. 그런 연유일까, 절 근처에서 군락을 이룬 꽃무릇이나 상사화를 흔히 볼 수 있다.
고고하고 야무지게 핀 꽃무릇을 처음 만난 것은 전주 한옥마을에 갔을 때 카페 앞 꽃밭이었다. 이울어져가는 여름빛을 온몸에 받으며 꽃을 피우는 모습은 매혹적인 여인의 자태처럼 눈길을 사로잡았다. 곧게 뻗은 꽃대 위로 양귀비 속눈썹처럼 위로 치솟은 자태는 범접할 수 없는 기운마저 감돈다. 주변에 잎이 없어서일까, 꽃대를 높이 올리고 올곧게 피어있는 모습은 피멍으로 물들어 그리움에 지친 외로움마저 느껴진다.
꽃무릇을 다시 본 것은 눈발이 휘날리는 초겨울, 가족들과 불갑사 여행 때 메마른 산기슭에서였다. 초겨울 치고 제법 내리는 눈발 속에 난초 잎처럼 무리지어 피어있는 녹색의 잎들은 계절에 걸맞지 않게 푸르렀다. 화려한 꽃이 지고 추운 겨울 녹색 빛의  꽃무릇을 보니 동전의 양면을 보는 것 같다.
불볕더위를 머리에 이고 올곧게 세운 꽃대 위에 기녀의 가채처럼 농염한 모습으로 꽃을 피우는 꽃무릇.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 때문일까, 화려한 자태에 가려진 그림자 너머로 기녀인 홍랑의 모습이 떠오른다. 조선시대 기생출신으로 여류시인이라면 개성 황진이와 홍랑, 부안의 매창을 꼽을 수 있다.
선조 때 함경도 경성의 관기였던 홍랑, 고죽 최경창과 나눈 애틋한 사랑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유명하다.
그녀는 당대의 삼당시인이며 팔문장으로 명성이 높은 최경창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문학적 소양과 식견, 재색까지 갖춘 그녀는 그 지역에 부임한 최경창과 만나 사랑을 나누지만 신분의 벽을 뛰어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랑의 힘은 죽음조차도 그들을 갈라놓지 못했다.
<중략>
이승에서 못 맺은 인연은 죽어서도 남아있는 것일까, 상사화처럼 서로 만날 수 없는 사랑이지만 천년과도 같은 그리움 속에서 그들의 사랑은 더 깊어만 가고 비석에 새겨진 애절한 연시가 꽃과 나비가 되어 넘나든다.
홍랑의 묘를 떠날 때 뒤돌아보니 수만 송이의 꽃무릇이 푸른 잎과 함께 그녀의 얼굴처럼 환하게 피어나는 듯하다.
꽃과 잎을 완벽하게 갖춘 꽃무릇의 자태는 가히 일품이다. 애절함으로 피는 꽃이기 때문일까 화색이 처연할 정도로 곱다.
불갑저수지를 돌아 나올 때 물가에 고마리꽃이 한창이다. 아기별들이 물 위에 쏟아져 내린 듯한 고마리꽃 주변에 사그라지는 붉은 빛을 부여잡고 피어있는 꽃무릇의 자태가 그리움으로 몽실몽실 피어나고 있다.


■ 동상 수상작 - 한흥수 / 충청남도 당진시

꽃불
그 많던 잎사귀
하나둘 버리더니
꽃대 하나 세우고
기도 끝에
꽃불이 되었다.
구름처럼 몰려와
아름다움에 감탄하지만
합장하는 이 하나 없네.


■ 동상 수상작 - 정주이 / 광주광역시 북구

상사화

이룰 수 없는 운명
부여 잡고 태어나
가늘게 숨죽인 신음 소리

고독의 언저리에 맴돌다
침묵으로 얼룩져 오도카니
밤을 적신다

둥근 빛살처럼
얼비쳐 새긴 사연
이대도록 맵고 쓰린 속품에
울을 치는가

가녀린 영혼의 뜰엔
미동도 없는 슬픔 남긴 채

불타는 정념 어쩌지 못해
해종일 토해내는 꽃무릇
청아한 밀월의 불씨
파르르 고갯짓하며

핏빛으로 물든 자리도
꽃비되어 내리는 몸부림도

떨림의 송이 송이
그리움이 묻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