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처럼 흘러간 인생, 내 삶은 성공적이야”
“꿈처럼 흘러간 인생, 내 삶은 성공적이야”
  • 영광21
  • 승인 2019.11.1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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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현 어르신 / 대마면 월산리

“쌀 한말을 가지고 나와서 모든 것을 내 힘으로 일구면서 살아왔어. 그동안 나쁜말 안 듣고 살았어. 마을에 봉사도 많이 했어. 인심 안 잃고 심덕心德 값해서 판사며느리를 얻었다고들 해.”
대마면 월산리 자택에서 만난 신지현(85) 어르신의 목소리에서는 활력이 넘친다. 거실에는 화목한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고 테이블위에 신 어르신이 펴낸 책들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신 어르신은 그동안 독서를 하다가 좋은 글귀가 있으면 틈틈이 스크랩을 해 뒀다가 책으로 펴냈다. 그렇게 펴낸 책이 무려 다섯권. <바른 삶의 길>(2007) <정도의 길잡이와 게이트볼>(2009) <효는 백행의 바탕>(2011) <시조 신숭겸 장군과 신사임당 모자 화폐 인물>(2013) <인간의 본성과 명언 인·의·예·지>(2015) 등이다.
신 어르신은 최근에는 독학으로 한글서예를 익혀서 고창예술제에서 특선까지 했다. 작품을 표구해 마을경로당 등에 걸어 놓았다.
신 어르신은 1936년 광주시 광산구에서 태어나 장성동화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졸업후 작은 형님을 따라 광주로 가서 가구 만드는 일을 배워 목수가 됐다. 26세에 결혼을 한 후 광주에서 가구 일을 했는데 5·16군사쿠테타가 일어나 세상이 뒤숭숭해지면서 장사가 안됐다.
신 어르신은 29세에 연고가 없던 대마면 월산리에 정착해 가구점을 하면서 효숙·전식·필식·성식·창식 등 4남1녀의 자녀들을  교육시켰다. 장롱·장식장·탁자 등을 만들었는데 문을 잘 짠다고 했다. 가구점이 잘 될 때는 직원이 두명까지 있었다.
신 어르신이 월산리에 왔을 당시 가난한 동네였다. 32세에 월산리 이장을 시작한 후 28년 동안 이장을 하면서 월산리를 자신의 집처럼 가꿨다.
“타지에서 오고 나이도 젊은 나를 이장을 시켜주어서 마을일에 더 성심을 쏟았지. 농악패를 만들어서 걸궁을 치면서 마을 사람들을 화합시켰어. 그 때는 젊기도 했지만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고 열심히 살았어.”
신 어르신은 대마면노인회 창립에도 힘을 썼다.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쳐 터를 구하고 40평 목조건물을 올렸다.
55세 때 대마면노인회 총무로 시작해서 70세에 회장직을 내려 놓았다. 신 어르신은 월산리의 살아있는 역사의 한 부분이다. 마을의 모든 것들이 그의 손길을 거쳤다.
신 어르신은 “한 평생이 꿈처럼 흘러왔어. 자식들 모두 무탈하고 자기 자리에서 일 잘하고 있고, 건강하고. 내 인생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