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없었지만 남편하고는 행복하게 살았어”
“돈은 없었지만 남편하고는 행복하게 살았어”
  • 영광21
  • 승인 2019.11.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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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순 어르신 / 법성면 대덕리

“돈이 없어서 몸도 많이 힘들었고 애들도 많이 못 가르쳤지만 그래도 남편하고는 행복하게 살았어.”
법성면 대덕리에 살고 있는 전정순(80) 어르신은 자신의 삶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전정순 어르신은 1940년 홍농읍 칠곡리에서 태어났다. 시골이었고 집안은 가난해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19살에 홍농 상석마을에 살고 있었던 김용수씨와 결혼 후 법성면 대덕리로 와서 평생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다. 결혼 후에도 가난은 전정순 어르신을 계속 따라다녔다.
“분가할 때 쪼빡 하나도 안 갖고 맨 몸으로 나와서 남의 집 작은방에서 신접 살림을 시작했지. 그런데 신랑이 결혼 직후 남의 집살이를 가버려서 신혼생활도 없었어”
20년전 세상을 뜬 남편은  결혼 후 쌀 열섬을 받고 부잣집 일꾼으로 들어갔다. 쌀 열섬이 당시에는 아주 큰 살림이었다. 남편은 부잣집으로 떠나고 전 어르신은 날품을 팔며 사는 날들이 시작됐다.
“그때는 쌀 열섬이 한꺼번에 들어오니까 아주 큰 돈이었어. 또 공장이 있기를 해, 장사를 할 수 있기를 해. 몫돈을 만질 수 있는 방법 그것밖에는 없었어. 5년 넘게 일꾼으로 일을 해서 작지만 집을 마련했어”
전 어르신은 작은 집을 쓸고 닦으면서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었다.
“나는 지금 여기서 혼자 살고 있는데 하나도 힘들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아. 이렇게 경로당에서 친구들하고 같이 놀아. 벌어먹고 살 때는 항상 힘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방도 더 따뜻하고 마음도 더 따뜻해. 젊은 사람들은 믿지 못하겠지만 젊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좋아.”
전정순 어르신은 2남4녀를 낳아 길렀다. 딸 둘은 초등학교를 졸업시켰고 딸 둘은 중학교 중퇴를 했고 아들 둘은 고등학교를 졸업시켰다. 지금은 광주에서 모두들 자리를 잡고 잘 살고 있다.
살림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힐 무렵, 전 어르신은 40대 초반에 자궁암을 앓았다. 암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끝냈다. 모아뒀던 돈은 암 치료비로 모두 들어갔다.
전 어르신이 농사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집안은 경제적으로 다시 일어설 수 없었다. 날품을 팔고 땅을 조금 사서 벼농사도 짓고 밭농사도 지으며 살았다.
“그래도 남편하고는 좋게 살아서 나쁜 기억이 별로 없어. 행복한 시간이 훨씬 더 많았어. 큰 것을 바란 것도 없어. 남편 밥상에 달걀 프라이 올려 놓으려고 애를 쓰면서 살았어. 소고기도 아니고 조기도 아니고 그것 하나 지키는 것도 쉽지 않은 삶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