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다 배우면 며느리에게 편지 쓰고 싶어”
“한글 다 배우면 며느리에게 편지 쓰고 싶어”
  • 영광21
  • 승인 2019.11.2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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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상 어르신 / 영광읍 녹사리

“한글을 다 배우고 나면 며느리와 손자며느리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 글로 쓰면 말로는 못 다한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영광공공도서관에서 만난 박금상(80) 어르신은 막 성인문해교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수업을 마친 할머니들은 여학생들처럼 수다를 떨면서 도서관 복도를 걸어 나왔다.
“글을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야. 기쁜 마음도 있고 왜 여태까지 글을 모르고 살았을까 새삼스럽게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해. 지금이라도 글을 배우니까 얼마나 다행이야. 받침 없는 간판은 읽을 수 있어. 아직도 은행에서 돈을 찾을 수는 없어.”
박금상 어르신이 한글을 배워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 은행에서 돈을 찾을 수 있는 것, 그림책을 읽는 것이라고 했다. 박 어르신이 영광공공도서관에서 한글 공부를 시작한 것은 2018년 4월.
군남면에서 농사를 짓고 살다가 논·밭 등 땅을 정리하고 집 한채와 빌라 한 채를 사서 영광읍 녹사리로 이사를 오면서다. 우연히 집 근처 도서관에 성인문해교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용기를 내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가 79세였다. 성인문해반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맏언니다.
박 어르신은 1940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남5녀의 형제들 속에서 살았다. 집안은 가난해서 학교에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다. 어렸을 때는 동생들을 업어서 키우다가 16살에 신발공장에 취직을 하면서 조금이나마 돈을 벌기 시작했다.
20세에 부산에서 결혼을 했는데, 2년 정도 결혼생활을 한 후 이혼을 했다. 그 이후의 삶은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로 온갖 일을 하면서 살았다. 배운 것이 없고 밑천이 없어서 돈을 모으지도 못했고, 글을 배울 기회도 없었다.
박 어르신은 55세가 되던 해 중매로 재혼을 하면서 군남면에 정착했다. 남편에게는 아들 하나, 딸 셋이 있었다. 논도 많았고 밭도 많았다.
박 어르신은 사근사근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처음 가져본 내 땅이 너무도 소중해서 몸을 안 돌보고 일을 했다. 살림은 점점 불어났다.
“내가 사람을 많이 사귀는 편이 아니어서 친구가 별로 없어. 내 삶에서 제일 친하고 고마운 사람은 며느리야.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말하면서 살았어”라고 말한다. 
박 어르신은 “영광으로 이사를 온 것을 너무 잘했다고 생각해. 남편도 내가 집안일을 하고 있으면 빨리 도서관에 가라고 챙겨주지. 선생님도 잘 해주시고. 열심히 공부해서 도서관에서 책도 빌려서 읽고 싶어”라고 희망을 내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