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았어”
“젊어서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았어”
  • 영광21
  • 승인 2019.12.06 10: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희삼 어르신 / 군남면 설매리

군남면복지회관에서 만난 김희삼(85) 어르신은 1935년 군남면 설매리에서 태어났다.
김희삼 어르신은 “젊었을 때는 일 무서운 줄, 세상 무서운 줄, 돈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았어”라고 말했다.
김 어르신은 “지금은 사는 것이 아주 즐겁지는 않아. 그래도 1주일에 이틀 복지회관에 나오고 또 1주일에 한두번씩은 영광터미널 옆에 있는 다방에서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친구들은 많아”라고 말했다.
김 어르신은 군남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서울로 상경해 서울에서 30년을 살았다. 서울로 상경하기 전에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열여섯살에 집안의 가장이 됐다. 다섯명의 동생들이 있었는데 중학교를 졸업시키고 형편에 맞춰 논을 나눠주고 분가시켰다고 한다.
“나도 어린 나이였지만 어떻게든 동생들은 학교를 졸업시키려고 했어. 그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기도 해.”
김 어르신은 “내가 6·25를 겪으면서 많은 친구들을 잃었어. 나 뿐만이 아니고 다들 비슷비슷했지. 우리가 산 세상은 지금 세상하고는 달라. 전쟁 통에 살아남은 것에 감사하면서 살았지”라고 말했다.
서울에서는 처남이 건축업을 했는데 처남의 회사에서 굵직굵직한 건물을 지었다.
김 어르신은 “60년대 후반부터 서울 세운상가·동대문종합상가·낙원 아케이드·파고다공원 증축 등을 했어. 일 무서운 줄 모르고 재미있게 했어. 돈도 흘러 들어오는 것처럼 많이 벌었어”라고 말했다.
김 어르신은 딸 넷을 낳아서 모두 교육시킨 후 출가시켰다. 한평생 멋지게 살았다고 했다.
김 어르신은 “60·70년대는 고속도로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의 모든 것이 만들어지는 시기였지. 그때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잠을 줄여가면서 일을 하던 때야. 아무것도 없던 땅에 세운상가가 지어진다고 생각해 봐. 꿈같은 일이었지”라고 말했다.
김 어르신은 50대 후반에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서 군남면 본가로 돌아왔다. 군남면에서 벼농사를 지으면서 이장 8년, 노인회장 5년을 했다.
그런데 김 어르신이 63세가 되던 해 아내가 암에 걸렸다. 아내는 서울성모병원에서 1년을 투병을 하다가 세상을 떴다. 그는 1년동안 병원에서 아내의 병간호를 했다고 한다.
김 어르신은 “아내에게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어. 그런데 내 복이 아니니까 살리기가 힘들었어. 아내를 떠나보내고 그 이후로는 크게 기쁠 일도 크게 슬플 일도 없더라고. 이제는 건강하고 마음 편하게 하루 하루 살고 싶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