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의 석연치 않은 판결 때문에 아직 목소리는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X파일'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세계만방의 사람들이 속속들이 알게 됐다. 참으로 부끄러울 일이다. 사회의 지도층이라는 재계와 언론계와 정계의 인물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공고한 동맹을 맺었는지 저절로 혀가 내둘러진다.
이번 사건의 몸통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준 대학은 지금 무슨 심정일까 무척이나 궁금하다. 또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천연덕스럽게 받은 이건희 회장의 뻔뻔한 철학에 그저 놀랄 따름이다.
그리고 이 자료의 공개를 막기 위해 '인권' 운운하면서 법원에 방송금지소송을 낸 당사자인 홍석현 주미대사와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의 파렴치함에 치가 떨린다. 자신들이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 조금이라도 반성했다면, 이런 소송은 아예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여겼으면 그따위 소송을 제기했을까, 역사를 얼마나 하찮게 보았으면 얼토당토않은 소송을 냈을까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홍석현 주미대사의 태도다. 방송과의 인터뷰를 하는 모양을 보면 반성하는 기미는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고,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오래된 일이라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없이 비위 좋게 입가에 미소까지 머금은 채 국민을 조롱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사람이기에 그렇게 낯짝이 두꺼운지 연구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른바 'X파일'은 대단히 중요한 자료다. 그것은 이 나라가 어떻게 운영돼 왔는지, 정치인과 경제계의 불미한 유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요한 자료를 <중앙일보>는 통신비밀보호법을 방패로 들고 나오고, 삼성재벌은 언론의 위법성을 강조하고 나서서 국민의 알권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정말이지 가소롭기 짝이 없다.
이번 사건으로 우리는 몇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우선 참여정부라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책임문제다. 노무현 정권이 이 사실에 대해 몰랐다고 한다면 현 정권은 참으로 무능한 정권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역으로 이 사실을 알면서도 홍석현을 주미대사로 임명했다면 문제가 있는 정권으로 더욱 강도 높은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시민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홍석현을 주미대사로 임명한 것에 대해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음으로 한나라당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한나라당이 무슨 일을 했는가를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한나라당이 1997년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스스로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한다고 공개한 것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말장난에 불과했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현재의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 지름길을 철저한 과거사 청산에서부터 시작한 선진국의 교훈을 새삼스럽게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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