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에 올 수 있는 자유로움이 좋아”
“경로당에 올 수 있는 자유로움이 좋아”
  • 영광21
  • 승인 2019.12.1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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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금애 어르신 / 불갑면 생곡리

영하로 내려간 쌀쌀한 날씨였다. 불갑면 생곡리에 있는 경로당에서 만난 정금애(88) 어르신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유모차에 의지해서 천천히 걸어서 경로당에 왔다고 한다.
“아침에 천천히 걸어서 경로당에 도착하면 대여섯명의 친구들이 있어. 함께 밥도 해 먹고 텔레비전도 보고 이야기도 하면서 지내.”
정금애 어르신은 함평군 손불면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불갑면 생곡리 녹동마을로 시집을 왔다. 14살에 해방을 맞았고 19세에 6·25전쟁을 겪었다. 다행히 전쟁 중에 집안에서 화를 당한 사람은 없었다.
정 어르신은 “고생 많이 하고 살았어. 친정도 가난해서 학교는 못 다녔어. 시집을 와서 남편이 남의 집살이 하고 조금 자리가 잡힌 후에는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어. 시장으로 장사를 하러 다니지는 않았어”라고 말한다.
정 어르신은 2남3녀를 낳아서 길렀다. 큰아들은 중학교까지 가르쳤고 딸들은 도시로 가서 자신들의 힘으로 야간고등학교를 마치고 직장에 자리를 잡았다.
정 어르신은 딸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지 못해서 항상 마음에 남아있다고 한다.
둘째 아들은 대학을 졸업했다. 정 어르신이 57세 되던 해에 남편이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
“3년 동안 큰딸 집에 있었어. 눈 수술·무릎수술 등 큰 수술을 세번하고 나니까 3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더라고. 수술을 마치고 몸이 어느 정도 회복한 뒤에는 주간보호시설로 가서 낮에는 주간보호시설에 있고 밤에는 다시 딸의 아파트로 돌아왔어. 그런데 나는 보호시설이 답답하고 싫어서 다시 녹동집으로 내려왔어”
정 어르신은 현재 혼자 지내고 있다. 군에서 요양보호사를 보내준다고 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나는 지금이 자유롭고 좋아. 아들이 같은 동네에서 소를 키우고 살아. 매일 전화를 하고 며칠에 한번씩 집에 다녀가곤 해. 문을 열면 산이 있고 들도 있고 지금이 좋아. 딸이 함께 살자고 하지만 나는 지금이 더 좋아.”
정 어르신이 있었던 주간보호시설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식사도 정갈했고 이런저런 프로그램도 많았다고.
그런데 그곳에 들어가는 순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을 시키는대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정 어르신은 “큰딸이 내가 몸도 마음대로 못 움직이는데 혼자 있으니까 걱정을 많이 하지. 큰딸 마음도 잘 알지만 그래도 나는 자유로운 것이 더 좋아. 다행히 이렇게 경로당까지 혼자서 걸어서 올 수 있으니까 다행이야”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