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에서 동네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어”
“경로당에서 동네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어”
  • 영광21
  • 승인 2020.01.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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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순 어르신 / 묘량면 영양리

“1주일 전에 서울에 있는 아들네 집에 다녀왔어. 병원을 서울에서 다니니까 2개월에 한번씩 서울에 가서 병원진료를 받은 후에 약을 타 가지고 와.”
김갑순(85) 어르신은 묘량면 영양리 당산경로당에서 마을 주변 어르신들과 함께 점심식사로 동지죽을 쑤어서 드신 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김 어르신은 장성군 삼서면에서 태어났다. 묘량면 영양리 당산마을로 시집을 온 후 60여년 동안 한 마을에서 살고 있다.
“시집 온 당산마을에서 대가족이 함께 살았어. 시부모님도 계시고 시숙·형님·아가씨 등 열명이 넘는 가족이 한 집에서 살았어. 예전에는 다들 없이 살아서 고생을 하고 살았잖아. 그런데 나는 큰 고생은 안하고 살았어. 시부모님도 잘해 주시고 남편도 다정하게 잘해 주었어.”
김 어르신은 2남 2녀를 낳아서 길렀다.
김 어르신은 “남편이 술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호탕하고 자상한 성격이었어. 술에 취해서 들어오면 김여사, 김여사 그렇게 부르면서 귤이나 과자 등을 꺼내서 내 손에 쥐어 줬지”라고 말했다.
남편은 살림이 펴질 때까지 소달구지를 끌었다고 한다. 버스나 택시 등 대중교통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당산마을에서 영광읍까지 동네사람들의 쌀 등을 실어 나르면서 돈을 벌었다. 푼돈을 벌었지만 돈이 하도 귀한 시절이라서 남들보다는 풍족하게 살았다.
적금을 부어서 목돈이 손에 쥐어질 때마다 소를 한 마리씩 늘려갔다. 소를 키워서 아이들을 대학까지 가르쳤다. 딸들도 차별하지 않고 힘 닿는데까지 가르쳤다고 한다.
김 어르신은 “애들은 순하고 착했어. 애들 생일날이면 꼭 새벽에 일어나서 팥시루떡을 해 주었지. 쇠고기를 넣어서 미역국을 끓이고 팥시루떡을 해서 생일상을 차렸어. 생일떡에 칼도 안 댔어. 시루떡을 칼로 자르지 않고 꼭 손으로 잘랐어. 어떤 액운도 들지 말고 행복하게 살라는 내 마음이었지. 애들 키울 때는 힘든 것이 하나도 없었어. 공부하는 뒷모습만 봐도 행복했어”라고 회상한다.
김갑순 어르신은 현재 당산마을에서 혼자 살고 있다. 오전에 유모차를 밀고 당산경로당에 도착해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점심을 같이 먹고 4시경 집으로 돌아온다.
김 어르신은 “광주에서 살고 있는 딸이 자주 오고 아들도 자주 전화해 줘서 외롭다는 생각은 없어. 아들이 서울에서 함께 살자고 하지만 지금 이렇게 경로당에 다니면서 이야기도 하고, 우리집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이 훨씬 더 좋아”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