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땅 삼경이면 밤마다 찬서리고
이국땅 삼경이면 밤마다 찬서리고
  • 영광21
  • 승인 2021.03.1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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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일본인의 제사상 받는 조선인 강항

 

봄기운이 완연해졌다. 일찍 꽃을 피운 매화, 산수유꽃이 절정을 향하고 있다. 매화, 산수유처럼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옛 선비를 만나러 간다. 수은 강 항(1567~1618)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다큐드라마 ‘간양록’을 봤다. 광주MBC가 기획하고 한가름 PD가 연출한 프로그램이었다. ‘간양록’은 일본 오즈시의 한 사찰에서 시작됐다. 일본인들이 모여 먼저 간 이의 영혼을 추모했다. 경건한 추모 의식의 주인공이 조선관료의 관복과 관모를 갖추고 있다.
 이역만리 일본에서, 일본인에 의해 제사상을 받는 이 조선인은 누구인가? 이에 대한 물음으로 실타래를 풀어나간 ‘간양록’은 다큐와 드라마를 접목시켜 흥미진진했다. 고증과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해 어렵기만 한 역사를 쉽게 풀어줬다. 

강 항은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붙잡혀 포로로 끌려갔다. 일본에서 2년8개월 남짓 포로로 살며 일본의 정세를 살펴 조정에 보고했다. 적진에서 몰래 세차례나 보낸 ‘적중봉소賊中封疏’가 그것이다. 조선이 당시 적국의 정세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강 항은 일본의 유학자 후지와라 세이카(1561~1619)를 통해 조선의 성리학도 전수했다. 당시 일본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였다. 강 항이 전한 성리학이 일본 근대화의 기틀을 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포로로 잡혀간 일본에서 성리학 전파
강 항은 16살에 향시, 21살에 진사에 합격했다. 27살에 과거에 들어 벼슬길에 나갔다. 강 항은 1597년 정유재란 때 호조참판의 종사관으로 전라도의 군량미 수송을 책임졌다.
일본군에 의해 남원성이 함락되자 강 항은 고향에서 의병을 모아 싸웠다. 중과부적이었다. 강 항은 이순신의 휘하에 들어가 싸우려고 배를 타고 가다가 일본군한테 붙잡혔다. 도망을 치고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려고도 했지만 그때마다 실패했다. 순천과 부산 앞바다를 거쳐 일본으로 압송됐다.
강 항은 일본에서 유학자들과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적진이었지만 일본의 유학자들과 교류하며 학문을 이야기했다. 후진도 양성했다. 자연스레 일본 성리학의 스승으로 대접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일본의 통치 및 관료체계, 지리와 풍속을 살폈다. 군사 정세와 시설, 장수 명부까지도 입수했다. 성곽의 건축법까지도 꼼꼼히 챙겼다. 전쟁에 대한 일본과 조선의 대처방안을 비교하며 조선의 군사제도를 비판하고 총체적인 개혁 방안까지 고민했다.
강 항은 정탐의 결과를 조선에 몰래 보고했다. 그 기록을 한데 모은 것이 ‘건거록巾車錄’이다. 죄인이 탄 수레, 즉 포로생활을 한 자신의 경험담을 적은 글이다. 나중에 제자들에 의해 ‘간양록看羊錄’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간양록’은 1980년대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방영됐다. 조용필이 부른 주제가도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국땅 삼경이면 밤마다 찬서리고/ 어버이 한숨짓는 새벽달일세/ 마음은 바람따라 고향으로 가는데/ 선영 뒷산의 잡초는 누가 뜯으리/ 어야어야어야 어야 어~야/ 어야어야어야 어야어야// 피눈물로 한 줄 한 줄 간양록을 적으니/ 님그린 뜻 바다되어 하늘에 닿을 세라…’
일본 시코쿠 에히메현 오즈시의 시민회관 앞에 강항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비문에 ‘일본주자학의 아버지, 유학자 강 항’이라고 씌어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소개돼있다.

 

힐링과 역사여행지 제격인 내산서원
우리나라에서는 영광 내산서원에 배향돼 있다. 서원은 강 항이 죽고 17년 뒤에 처음 세워졌다. 강 항을 추모하며 그의 절개와 성품을 기리는 공간이다. 강 항의 동상과 유물전시관이 있다. 홍살문을 지나서 외삼문과 내삼문, 내산서원, 용계사, 경장각을 차례로 만난다. 내산서원 건물 뒤에 있는 용계사가 강 항을 모신 사당이다. 오른편 산자락에 강항의 묘도 있다.
내산서원을 찾는 사람이 드물다. 갈 때마다 한산하다. 코로나 시대라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고민을 할 필요도 없다. 서원으로 들어가는 길에 핀 동백꽃과 산수유꽃도 예쁘다. 힐링을 겸한 역사 여행지로 맞춤이다.
인근에 가볼만한 데도 많다. 내산서원이 있는 불갑면 쌍운리에 박관현(1953∼1982) 열사의 생가가 있다. 1980년 당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은 그해 5월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민족민주화대성회를 이끌었다. 82년엔 광주교도소에서 5·18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하다가 사망했다. 국립 5·18민주묘지에 잠들어 있다. 내산서원에서 불갑사로 가는 길목에 박관현 동상도 있다. 영광JC가 세웠다.
역사 깊은 절집 불갑사도 지척이다. 백제 침류왕 원년인 384년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하면서 처음 지은 도량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중창과 중수, 보수를 거쳤지만 기와 하나까지도 허투루 봐선 안될 절집이다. 
/ 전남새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