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원의 대하소설 파시
서주원의 대하소설 파시
  • 영광21
  • 승인 2021.04.2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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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 - 1. 갑신년 중추 칠산바다의 월식 ③ 

 

개양할미는 막내딸을 제외한 딸 일곱을 칠산바다 여러 섬과 육지에 시집보냈다. 위도로 시집간 딸도 있다. 막내딸은 여울굴에 남아서 개양할미를 받들어 모셨다.
변산邊山. 내소사來蘇寺를 품고 있는 변산은 호남의 5대 명산이다. 칠산바다를 등지고 누운 듯 변산의 바깥쪽엔 산이 있고, 안쪽은 비었다. 바깥쪽을 외변산, 안쪽을 내변산이라 부른다. 
변산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였다. 칠산바다로 돌출한 육지여서 흔히들 변산반도라 일컫는다.
변산반도 끄트머리엔 두곳의 절경이 있다. 동쪽은 채석강采石江이요, 서쪽은 적벽강赤壁江이다.  
격포진格浦鎭 닭이봉 아래 채석강은 겹겹의 시루떡을 칼로 자른 듯한 모양새다. 구겨진 퇴적층이 싹뚝 잘려 천 길 낭떠러지 같은 기암절벽을 이룬다. 칠산바다가 억겁의 세월 동안 깎고 다듬어 기이하게 조각해 놓았으리라. 마치 수만권의 책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처럼 말이다.  
당나라의 시선詩仙 이태백李太白은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 강물에 빠져 죽었다.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그랬다. 그 강의 이름이 채석강이다. 그 강과 닮았다 해서 격포진의 기암절벽에 채석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육지의 강도 아닌데 그런 이름을 얻게 된 건 채석강 인근 적벽강도 마찬가지다. 역시 칠산바다가 억겁의 공력을 들여 깎고 다듬어 갯가에 곧추세운 기암절벽이다.  
송나라 대문호인 소동파蘇東坡는 ‘적벽부赤壁賦’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대자연의 유장함에 비하여 인생의 덧없음을 한탄한 글이다. 과거에 장원급제해 벼슬길에 나섰던 소동파는 유배를 당해 양자강을 유람한 적 있다. 이때 적벽부를 지었다. 중국 후한後漢 말기 조조가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에 맞서 싸웠던 적벽대전赤壁大戰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천하의 절경이라는 양자강 적벽강과 흡사해서 귀한 이름을 얻게 된 죽막동竹幕洞 적벽강은 병풍처럼 펼쳐진 붉은 바위가 5리나 이어진 기암절벽이다. 붉은 절벽은 금방이라도 칠산바다에 풍덩 뛰어들 본새다. 
죽막동엔 울창한 대나무숲이 여러 군데 있다. 대나무 종류는 시누대다. 
예로부터 활의 명수들은 해장죽海藏竹으로 만든 화살을 썼다. 충무공 이순신도 해장죽을 손수 심어서 활을 만들었다. 갯바람을 맞고 자란 해장죽은 최상급 전투용 화살을 만드는 데 제격이다. 
대나무 겉에 흰색 가루와 칼집 모양의 잎이 오래 붙어 있는 해장죽은 여러 가지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시누대도 그런 이름이다.
주로 갯가에 뿌리를 깊이 박은 시누대는 키가 스무척이 넘도록 자라기도 한다.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시누대로 화살과 낚싯대도 만들었다. 붓대도 만들었다. 담배가 들어온 뒤로는 시누대로 곰방대도 만들고 있다.
‘죽막竹幕’이란 대나무나 죽세품을 관리·제조·보관하는 막이다. 죽막동 죽막은 나라의 전투용 화살을 만들 시누대 대밭을 관리하고, 시누대를 베어서 보관하는 일종의 병참기지다. 
죽막동의 해안가 절벽엔 울창한 후박나무숲이 있다. 죽막동 사람들이 갯바람을 막으려고 나무를 심고 가꾼 숲이다.  
후박나무숲에서 서북쪽으로 적벽강 갯가를 따라가노라면 수성당 아래 기암절벽에 입구를 둔 여울굴이 나온다. 후박나무 숲에서 곰방대에 짓눌러 담은 담배 두어대 피울 참에 마주치는 여울굴 주변 기암절벽의 높이는 칠십척尺에 이른다.
죽막동 사람들은 이 여울굴을 당굴이라고도 부른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땅에도, 바다에도, 마을에도 수호신이 있다고 여긴다.  마을 근처의 산이나 언덕에 당산堂山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예도 갖추고, 제도 올린다. 죽막동 사람들에겐 여울굴이 당산처럼 신성한 공간이다. 그래서 당굴堂窟이라 부르며 지극정성으로 받들고, 상투가 땅이나 갯바닥에 닿도록 예도 갖춘다. 
칠산바다가 하루 두차례씩 들고나는 여울굴. 까마득한 그 옛날, 개양할미가 도끼를 모로 세워서 하늘 높이 쳐들었다 힘껏 내리찍어서 그런지, 칠십척 적벽에 세로로 뚫린 여울굴 입구는 상대적으로 좁은 편이다. 하지만 굴의 내부는 여성의 샅 안쪽처럼 널찍하고, 아늑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