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까지 갔던 목숨, 더불어 살아야죠”
“죽음 앞에까지 갔던 목숨, 더불어 살아야죠”
  • 박은정
  • 승인 2005.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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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당골칭찬릴레이
염산면 오동리 3구 저수지가 아름다운 연화마을. 그리고 그곳의 부녀회장 정형금(54)씨.

지금부터 30여년전 그는 뇌속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얻어 사경을 헤맸고 이곳 저곳 병원을 전전했지만 뚜렷한 병명을 찾지 못하고 주위에선 그를 포기하게 된다. 이런 최후의 상황속에 부산에서 자개농을 만드는 농공장을 운영하던 그의 남편은 과감히 사업을 청산하고 병든 아내를 위해 귀향을 결심했고 그때부터 연화마을로 옮겨와 머무르고 있다.

정 씨는 “처음에 마을에 왔을 때는 머리가 아프다고 하니 모두가 온전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크고 작은 텃세가 심했다”며 “그래도 진실 된 마음으로 마을 분들을 대하다보니 마음의 문은 조금씩 열어졌고 가까운 이웃이 돼 갔다”고 정착초기의 어려움을 밝혔다.

그는 또 “이렇게 시골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돼 마을에서 부녀회장을 맡아 달라는 제의가 들어왔다”며 “몸이 온전하지 안았지만 마을을 조금이라도 돕는다는 생각에 부녀회장을 맡아 지금까지 25년을 넘는 세월동안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상을 포기했던 그는 마을의 부녀회장 일을 시작하고 농사를 조금씩 지어가며 열심히 살아갔고 어느덧 병이 점점 낳아갔다. 정 씨는 1달 300원으로 시작해 지금은 2,000원을 걷고 있는 회비를 모아 작지만 얼마간의 기금을 조성했고 해마다 마을 어르신을 위한 경로잔치나 효도 관광을 실시하고 있다.

그는 마을의 부녀회장말고도 염산면부녀회장을 5년간 역임했고 염산면 전·현직 부녀회장들의 모임인 <뿌리회> 총무를 14년째 맡고 있다.

함께 활동을 하고 있는 <뿌리회>의 한 회원은 “정 회장은 꼼꼼하고 정확하게 맡은 일을 잘 처리하는 올곧은 사람이다”며 “일상생활 또한 근검절약 하는 검소한 생활을 보여 주위에 모범이 되고 있으며 차기 염산농협 이사로 추천 될 만큼 주변에 인기가 높다”고 그를 칭찬했다.

1남1녀의 자녀 뒷바라지와 하나 둘 이룬 논농사 3,200평과 밭농사 1,000여평을 지으며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갔던 그는 제2의 삶을 알차게 채워가고 있다.

“마음놓고 바깥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항상 배려해주는 남편의 외조가 없었다면 오랜 세월 활동이 어려웠을 것이다”며 “어떤 일이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양보하며 먼저 베푼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정형금씨.

저 세상으로 갈 줄만 알았던 아내가 이렇게 잘 살고 게다가 남을 위한 봉사활동을 열심히 펼치고 있으니 사랑스러울 수밖에….
정 씨는 이런 남편의 후원을 바탕으로 이웃을 다시 얻은 생명만큼이나 크고 귀하게 챙겨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