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원의 대하소설 파시
서주원의 대하소설 파시
  • 영광21
  • 승인 2021.07.1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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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9 - 갑신년 중추 칠산바다의 월식 ⑨  

눈먼 어머니가 여울굴에 떨어져 죽었는데도 바다로 나간 두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도, 그다음 날도….
어머니의 주검에 날아든 청파리와 금파리가 까놓은 쉬가 슬고, 쉬파리까지 머물다 떠났지만 형제는 돌아오지 않았다. 형제가 돌아온 때는 주검에 들짐승과 날짐승이 입을 파묻고, 심지어 갯가 납작게까지 작은 집게발을 들이대고 나서도, 세월이 한참 흐른 뒤였다.
어느 날엔가, 형제는 함께 죽막동으로 돌아왔다. 하얀 돛배를 타고 귀항한 형제는 뱃머리가 갯가에 닿자마자 집으로 뛰어갔다.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형제는 마을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행방을 물었다. 아는 이가 없었다.
며칠 뒤, 형제는 여울골 벼랑 위에 나란히 앉았다. 간조인 간물때부터 만조인 찬물때까지 두 사람 사이엔 한마디 말도 오고 가지 않았다. 어머니의 행방을 찾지 못해 얼굴엔 수심만 가득할 뿐.
찬물때가 되니 어김없이 여울골에도 칠산바다가 밀려들었다. 형제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깊은 시름에 빠져 있는데, 여울골 적벽 아래에 철썩이던 파도 속에서 백발의 노인이 쑥 솟아 나왔다. 오른손엔 황금부채 두개가 들려 있었다.
차림새가 마치 도인 같은 백발노인이 바다에서 나와 공중으로 날아올라 여울굴 절벽에 내려서자, 형제는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한참 뒤에 끊어지려던 정신 줄을 되잡은 형제는 가까스로 반허리를 일으켜 되앉았다.
백발노인은 한바탕 호탕하게 웃고 나서 이렇게 물었다.
“어찌 너희 형제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구나?”
여전히 정신이 몽롱한 형제는 입술을 떼지 못했다.
“그래 너희 형제가 어찌 그리 깊은 시름에 빠져 있는지 내가 어이 모를까. 앞도 못 보는 홀어머니 행방을 몰라 그런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만 어머니는 바다에 나간 너희들이 돌아오지 않자 집에서 여기까지 걸어 나왔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이 너머 여울굴에 떨어져 돌아가셨느니라!”
백발노인의 귀띔질에 형제의 눈에서는 금세 눈물이 펑펑 쏟아졌고, 입에서는 큰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형제의 대성통곡이 멎기를 기다렸다가 백발노인이 입을 열었다.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만 어머니는 극락왕생하셨다. 그러니 어머니 걱정은 그만 접고, 일단 이 부채를 받거라!”
형제는 백발노인이 내민 황금부채를 하나씩 받아 들었다. 그런 다음, 무릎을 꿇고 앉아 백발노인을 올려다보았다.
“이 두개의 부채로 너희 형제는 앞으로 큰일을 해야 된다. 이 칠산바다를 포함한 너희 고을을 잘 지키고, 때가 되면 이 나라도 구해야 되느니라!”
형제는 이마를 땅에 대고 그 말에 따르겠노라 맹세했다. 형제가 고개를 들었을 때, 백발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연기처럼 사라졌다.
백발노인이 떠난 뒤, 형이 장난삼아 황금부채를 바다 쪽을 향해 부쳤다. 그러자 칠산바다가 뒤집혔다. 세찬 돌풍이 밀어 올린 집채만 한 파도는 여울굴을 넘어 죽막동까지 밀려들 기세였다.
동생이 오른손에 쥔 황금부채를 부치자 바람이 그치고, 성난 파도가 누그러졌다. 순식간에 칠산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해졌다.
형제는 백발노인이 환생한 어머니라고 여겼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도인으로 환생해 하늘이 자식들에게 내린 천명을 알려주려고 잠시 강림했을 것이라고 헤아렸다.
사나흘 뒤, 형제는 도인이 손에 쥐여준 황금부채를 들고 칠산바다의 바람과 파도를 관리하러 나섰다. 때마침 여울굴에서 철마鐵馬 한마리가 발견됐다. 철마는 몸집이 그리 크지 않고, 살아서 움직이는 말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두 형제가 올라타면 몸집이 몇배로 커졌고, 살아서 움직였다. 다른 사람이 올라타면 그런 일이 없었다.
형제는 이 철마를 번갈아 타고 땅과 바다를 내달렸다. 주로 칠산바다의 어부들을 지키는 일에 매진했다. 거센 풍랑이 일면 황금부채를 부쳐 잠재웠다.
칠산바다엔 가끔 왜구가 침입했다. 그럴 때면 형제는 철마를 타고 바다로 달려가 황금부채로 파도를 일으켰다. 그렇게 해서 왜구를 물리쳤다.
덕분에 물길이 거칠기 짝이 없고, 왜구의 침입이 빈번한 칠산바다에서 어선들은 안전하게 조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상선들은 탈 없이 칠산바다를 거쳐 서해를 오고 갔다.(계속)

※ 농업경제신문과 동시 게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