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봉(鳳)에 오동나무(桐)의 형국
새 봉(鳳)에 오동나무(桐)의 형국
  • 영광21
  • 승인 2005.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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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마을이야기 51 - 불갑면 봉동마을
불갑면 방마리 봉동마을은 면소재지에서 불갑사 쪽으로 약 2km 지점에 위치하며 도로변가 마을이다. 산세는 뒤로 두루봉산이 있고, 지세는 좌측으로 방마산이 보이고 동쪽 우측으로는 불갑산이 두루 보인다. 하천의 방향은 불갑사에서 불갑저수지쪽으로 흐른다.

원래 촌명을 백운산이라 불렀으나 150여년전 진주강씨인 강문희가 봉촌이라 개칭해 다시 봉동(鳳桐)이라 칭했다. 새봉자(鳳) 오동나무동(桐)의 형국이라 청오동나무를 많이 심으면 그 마을이 번창한다는 설도 있다.

마을이 최초로 형성된 연도는 강 항 선생의 7대손 강재찬이 터를 잡아 마을이 형성됐고 영성정씨인 정병직, 정대수는 호남권의 제일가는 서예가로 알려졌으며 선생의 사당도 있었지만 6·25 당시 훼손됐다고 한다. 정대수는 수많은 학자들을 배출하고 마을 주민들에게 서예도 사사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생활이 어려워 쌀밥은 거의 먹을 수가 없어 보리·감자·칡뿌리·누룩나무 껍질 등을 먹는 생활고를 겪었고 강기원은 왜정때 징병당해 군인으로 필리핀에 갔으나 무사귀환하고 강천원은 일제때 징용 갔다와서 이미 고인이 됐다. 한국전쟁 당시에 12명 정도 인명피해가 있었으며 가축이나 곡식 침구류 등을 강제로 빼앗겨 어렵게 지냈다.

과거에는 웃샘물(석관수)을 길어 사용했으나 현재는 지하수를 사용하는 봉동마을은 1978년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지붕개량을 하고 입식부엌·화장실개량 등을 실시해 20여 가구가 지금의 마을을 형성하게 됐다. 60여년 전부터 촌중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금의 마을회관은 1980년 대통령의 하사금을 150만원 지원받아서 지은 것이다. 부족한 돈은 주민들이 부담해 마련했고 1999년도에 1,000만원 지원을 받아 대수선했다.

마을 북쪽 농로옆과 서쪽 고개마루에는 지석묘가 각각 2기, 4기가 있다. 북쪽 농로옆 지석묘는 영광농협 불갑지소 창고가 있는 삼거리에서 봉동 마을로 가는 도로의 중간지점에서 좌측으로 100m쯤 떨어진 농로앞에 위치하나 상석 하부가 모두 매몰된 상태여서 지석의 유무를 확인할 수 없다. 서쪽 거래마루의 지석묘는 고래마루(방골재)에서 우측으로 50m 쯤 떨어진 곳에 있다.
자료제공 : 영광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