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설영 시인의 명복을 빌며 / 장진기
詩碑에 무성한 풀을 베고기단석처럼 아무런 미동 없이 앉아있었다.
매미들이 애초기 소리처럼 윙윙 울더니
뚝뚝 졌다. 노을처럼 흥건한 풀내음
땀은 등을 타고 소금배 실어 나르는 뱃길로 흘러가고
옛 시인의 노래 한 소절 걷어 올 듯 해거름의 그물들이
마을에 쫙 깔리면서, 나는 우둑이 일어섰다.
돌아보았다
비틀비틀 넘어가는 석공의 망치소리 울렸다.
아직도 덜 새겨진 글자 틈에는
후끈한 온기가 만져졌다. 하나 둘 일어서는 불빛들이
속눈썹을 깜박이며 물끄러미 바라볼 즈음
서해안 갯벌 보듬고 구릉 산들이 손짓하였다.
갯벌 위에 떠서
풀 베고 앉아있는 내 그림자 넘겨다보는 별들은
시비 곁을 아무도 찾지 않더라도
쑥부쟁이 잡풀들이 오목한 석각에 손가락 끼고
지키리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백 년 전의 신발소리를 담고 별은
서산에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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